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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Nov 25. 2023

어제의 나보다 행복하고, 내일의 나보다 불행하자

방관일지 EP.15

    불행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행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게도, 깊이도, 형태마저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불행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불행은 시작부터 불행하다. 불행한 사람들 역시 불행을 반겨주지 않으니깐. 불행은 그런 외로운 감정을 먹고 자란다. 불행의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 겪어야 할 불행의 무게가 다르고 그 깊이가 다를 뿐 아무도 형태를 지례짐작할 수 없다. 불행한 순간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오고 수많은 그림자가 몸을 아래로 점점 끌어당기곤 했다. 행복한 순간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새하얀 빛이 몸을 감싸 안는다. 불행과 행복은 닮아 있기에 다르다. 나는 지금 존재하는 내가 평범했으면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오늘을 살아갈 내가, 부디 어제의 나보다는 행복하되 내일의 나보다는 불행했으면 했다. 


    불행은 나도 나를 모를 때 

    비집고 들어와 나를 차지한다

    참으로 비겁하다


    나는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자책하던 시기가 있었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죄책감이 들었다. 어떻게 그리 웃을 수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모두와 어울릴 수 있었는지 스스로를 탓했었다. 마이너스한 감정을 품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우울증은 그저 어두운 경우를 말할 때가 많다. 빛 한 점 없는 방 안에 틀어박혀 사람도 만나지 않고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그런 삶. 하지만 정작 우울을 마주하면 그럴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불행으로부터 파생된 우울함은, 남들처럼 웃고 떠들고 먹고 입고 전부 함께해도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없어서, 정말로 행복하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어서 우울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순간 우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차오르곤 하는데, 나는 그럴 때면 그냥 멍 때리고 있었다며 싱긋 웃곤 했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했다

    불행에 허덕이며 죽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제보다 행복하고

    내일보다는 불행하기로 했다


    불행을 받아들이고부터는 오히려 하루하루가 담담해졌다. 불행과 우울을 품고 산다는 건, 매 순간 생겨나고 있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상대로 이겨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들 다 겪는 건데 왜 못 견디냐는 무책임한 말.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는 성의 없는 답. 얼마나 힘들지 다 이해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라는 동정. 그 어떤 말보다 용기를 가지게 해 준 생각은 따로 있었다. 힘들어서 죽어가던 예전의 나와 앞으로 죽도록 힘들 나를 제치고 지금 내가 여기에 살아 있다는 것. 나는 나와 나를 비교했고, 나와 나를 격려하고 토닥였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살아갈 이유를 찾아냈다.


    어제의 나보다는 행복하고, 

    내일의 나보다는 불행하자

    오늘의 내가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떠나려는 순간이 무색하게

    붙잡고 나아지자

    나는 어제보다 조금 행복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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