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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는 경기장 안에서 싸운다

나의 계약해지 일기 #4

by Note for journey

결국 원만한 합의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법적 대응으로 이어진 그 사람과의 분쟁은 기관 내 많은 사람에게 알음알음 알려졌다. 모두 다 이 일을 처리하고 있는 나를 걱정하고 응원한다.

가장 가깝게 나를 지켜보는 우리 팀원은 물론이거니와 사무실에 앉아 변호사와의 통화, 외부 파트너와의 통화를 의도치 않게 듣게 되는 다른 팀 동료들도 이 일이 쉽게 풀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로 알았을 것이다: 사무실에 콜부스가 설치되어 있는데 내 목소리와 딕션은 왜 이렇게 선명하여 콜부스를 뚫고 나가 마치 스피커폰으로 생중계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걸까?

통화를 마치고 나올 때 모든 동료는 나를 향해 '어떻게 되어가는 거에요?' 라는 호기심과 안타까움이 섞인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그러한 응원의 제스처만큼이나 힘을 빠지게 하는 사람들도 늘 있다. 왜 그때 그 선택을 했는지, 왜 그 사람을 다각적으로 검증하지 못했는지, 왜 중간중간 경고를 주지 않았는지 은연중에 나의 미숙함을 질책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남들은 그렇게 바로 아는 것을 나는 왜 못했을까? 당연하다. 그때의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외부 파트너를 찾고 프로젝트 제안서를 쓰면서 파트너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움직이겠는가. 물론 앞으론 더욱 더 검증하고 경계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나 처럼 이 상황에 들어와본 경험이 없다. 우리는 늘 전투장 바깥에서 검투사의 경기를 본다. 관중으로의 나는 시야가 확보되고 상대방의 전술이 눈에 보이기에 놀랍도록 뛰어난 통찰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경기는 해설자가 아닌 검투사가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내가 이 싸움에서 어떤 과정을 어떻게 지나오며 무슨 행동을 했고, 무슨 말을 듣고 내뱉어왔는가 다 알 수가 없다.

나도 늘 시뮬레이션을 통해 완벽한 대화와 말끔한 상황 종료를 준비했다. 하지만 모든 준비가 수포로 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늘 힘겹게 무력감과 싸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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