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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가방 Jul 25. 2023

자기 계발이라는 함정

도서『손쉬운 해결책』

아침형인간, 넛지, 그릿, 자존감 등 돌아보면 시대마다 유행하는 자기 계발 키워드가 하나씩 있었다. 나는 책에서까지 이래라저래라하는 걸 듣는 게 질색이라 자기계발서를 외면하는 편이다. 그래도 서점에서 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자기계발서를 볼 때면 어쩐지 불안해지곤 한다.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하는 이 책들은 너 빼고 다 아는 인생의 비밀이 이 안에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자기 계발 담론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성공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심리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학자라 불리는 자들이 적절한 통계자료와 논문, 사례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을 읽는 평범한 나에게도 적용될 것만 같다. 그래서 더 많은 호응을 얻는다. 이렇게 한번 대세로 자리 잡은 자기 계발 분야의 심리학 이론은 책 한 권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제도와 인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손쉬운 해결책』의 저자 제시 싱걸은 지금껏 전 세계를 강타했던 자기 계발 분야의 여러 심리학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정한 이론 하나가 아니라 이 분야 전반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담론이 등장해 인기를 얻고 세상을 바꿔 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본다. 그 세계관을 ‘프라임월드’로, 거기서 우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 요인을 ‘프라임’으로 이름 붙인다. 


이 세계관의 사람들은 우리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이 ‘프라임’을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올바르게 적용하면 손쉽게 해결된다고 믿는다. 그 결과, 각자의 어려움은 마치 장보기나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정말 우리는 그렇게 간단하게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존감, 긍정심리학, 그릿, 넛지 등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를 크게 바꿔놓은 자기 계발 심리학 개념 8가지를 비평하고자 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심리학 이론들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학문의 영역을 넘어서 ‘히트상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자존감 이론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최근에 자존감 열풍이 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1980~90년대에 자존감 담론이 한 차례 교육계를 휩쓸었다. 개개인의 자존감이 높아지면 범죄율이 줄어든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전 미국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 혈안이 된 것이다.


자존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범죄율과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게 밝혀진 건 시간이 더 흘러서의 이야기다. 사실 당시에도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기보다 여러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얽혀서 확산된 것에 가깝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활동은 돈을 투자해 더 좋은 교사를 채용하고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것보다 적은 비용을 요구했기에 인기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런 풍조가 이어져 자존감을 다루는 일은 미국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때로 어떤 자기 계발 심리학 이론은 그것을 처음 제안한 개인의 손을 떠나 걷잡을 수 없이 그 영향력을 키워 나가기도 한다. 책에서는 ‘그릿’을 예로 든다. 앤절라 더크워스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덤벼드는 경향성’을 ‘그릿’이라 정의하고 그릿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을 내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릿은 원래 있던 개념인 ‘성실성’, ‘끈기’와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릿이 없는 아이들이 그릿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더크워스도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일단 ‘그릿’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을 매혹하고 학계와 정계의 유명인들이 그릿을 언급하기 시작하자 그릿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매력적인 열쇠로 둔갑한다.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높은 그릿 덕에 성공했다는 사례는 희망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이미 존재하는 교육 불평등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고, 그릿 외에 다른 성공 요인을 과소평가하게 한다. 게다가 저자는 그릿 개념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대부분 이미 중산층 이상 계급임을 지적한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아는 자기 계발 담론이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심리학 아이디어를 통째로 아무 효용 없는 ‘사이비’ 취급하려는 건 아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나 그릿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우리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는 그게 과장되고 비약되어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근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매혹적인 아이디어가 손 안 대고 코 푸려는 현실과 만났을 때 일이 커진다. 연구자와 대학, 언론, 정치인, 교육자 모두 여기에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저자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특정한 심리학 아이디어가 유행하며 불평등과 억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관련된 여러 사례와 실험 결과가 책 전체에 걸쳐 나온다. 그중 결론 부분에 나온 블랜턴과 아이키저의 실험에 따르면 이른바 ‘프라임월드의 혁신’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소수자 집단에 속한 사람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불리한 처지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더 많이 지지했다. 사회 구조나 권력의 문제조차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사람답게 이런 몇몇 실험으로 간단히 결론 내려버리는 일을 경계하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심리학 아이디어의 위험성을 짚어낸다. 그리고 점차 변해가는 학계 분위기와 개혁 중인 연구 방식을 언급하며 20년, 30년 뒤에는 이 책이 필요 없을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들의 벌을 받는 첫 세대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매우 불만족스러운 대답이고, 잘 팔릴 만한 대답도 아니다. 더 나은, 희망적인 대답은 이랬다. 저 바깥의 상황이 당장 나아지지는 않더라도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다시 뛰어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 또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계발할 수 있는 자질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 213쪽
  



이 책이 말해주는 진실은 씁쓸하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수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공포스럽고 삶의 의욕을 떨어뜨린다. 모든 문제에 들어맞는 매끄러운 해결책은 없다. 그 해결책을 적용해야 하는 세상은 복잡하고 울퉁불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유행하는 심리학 이론이 장막을 쳐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했다면, 이제는 그걸 걷어내고 너머에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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