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틱틱붐>
무엇이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뤄서 하는 편이다. 이 습관을 고치려고 이것저것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 그중 와닿았던 것은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의 상당수가 불안감을 잘 느끼고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내용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불안 때문에 일을 미루는데, 그 미루는 행위가 결국 더 큰 불안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늘 초조해져서 삶이라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시간에 쫓기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뮤지컬 <틱틱붐>도 한 남자의 불안으로부터 시작된다. 남자의 이름은 존. 몇 년째 ‘유망한 작곡가’에 머물러 있는 돈 없는 예술가다. 서른 살 생일을 앞둔 그는 요즘 들어 부쩍 “틱틱” 하는 환청을 듣곤 한다. 시계의 초침 소리 같기도 하고, 폭탄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것 같기도 한 이 소리가 그를 미치게 만든다. 그는 불안하다. 끝내 자신이 꿈꾸는 뮤지컬을 만들지 못하고 나이만 먹을까 봐. 틱틱 소리가 멎으면 무언가 끔찍한 것이 들어닥칠 것만 같다.
관객은 뮤지컬을 보며 현실을 잠깐 잊곤 한다. 하지만 <틱틱붐>은 오히려 현실로 더 깊이 뛰어드는 뮤지컬이다. 첫 넘버 '30/90'에서 ‘서러운 서른 살’을 부르짖으며 서른 살에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존의 모습은 몹시 현실적이다. 하나둘 꿈보다 현실을 택해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과 부모님의 걱정 어린 잔소리 사이에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존뿐만이 아니고, 더 나아가 예술가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어쩌면 작품의 배경인 90년대보다 더 심각해졌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격변하는 이 세상에서 대비해야 할 것은 끝이 없고, 그와 동시에 지금 일어나는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제때 취업을 한 직장인조차 그러하다.
존의 일상도 고민과 불안의 연속이다. 뉴욕을 떠나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연인은 존의 선택을 기다리고, 같은 꿈을 꿨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세일즈맨이 된 친구는 일자리를 제안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랫동안 준비한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숍이 마치 사활이 걸린 일처럼 느껴진다. 서른 번째 생일 며칠 전에 열리는 이 워크숍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뮤지컬 인생도 결단이 날 것만 같다. 기대가 되는 만큼 두렵고, 빨리 했으면 하는 마음과 그냥 도망치고만 싶은 마음이 교차한다.
이쯤 되면 이 워크숍에서 무언가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지만, <틱틱붐>은 역시 지극히 현실적이다. 오기로 한 친구들과 관계자들은 무사히 워크숍 현장에 도착했고, 공연도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심지어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정식 공연으로 제작하겠다는 사람이 쉽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성이 있으니 다음 작품을 또 써 보라는 권유를 받을 뿐이다. 자기도 모르게 이 워크숍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존은 무너지고 만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픽션에서는 큰 고비를 넘기면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찾아온다. 이와 달리 현실에서는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다른 고비가 나타날 뿐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깊게 심취했던 존은 워크숍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도 작품 제작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인데, 나에게는 왜 여느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비극의 주인공처럼 절규하던 존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은 마이클의 투병 소식을 알고 나서다.
존은 마이클이 자신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거라며 화를 냈지만, 그 결과로 알게 된 것은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꿈을 내려놓은 그의 친구들은 비겁했던 게 아니라 그저 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책임지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존도 마찬가지다.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고, 그의 뮤지컬 인생 역시 워크숍 결과가 뜨뜻미지근하다고 해서 갑자기 막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존은 서른 살을 받아들인다. 속절없이 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존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아닌 우리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가는 돌멩이 같은 존재인 걸까. 그렇다고 <틱틱붐>이 모든 것이 소용없다는 식의 허무주의를 말하는 작품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를 이야기한다.
뮤지컬을 보며 한 가지 독특했던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존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스스로 서술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이 서술은 존의 말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여러 장면에서 존의 얼굴은 클로즈업되어 무대 모니터로 생중계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들려준다'. 이것은 존이 이 세상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자기 인생의 서술자임은 분명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걸맞는 보상과 적절한 사건을 기대하게 되지만 서술자일 뿐이라면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워진다. 서술자인 나는 이 이야기의 장르를 선택할 수 있다.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할 수 있다. 여기에 옳고 그름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무엇이든 마음을 정했다면, 거기에 충실하게 살아가면 된다. 과거의 후회에 얽매이거나 미래의 두려움에 옴쌀달싹 못 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흘러가는 나의 삶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주인공이라는 부담을 내려놓으면,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양자택일의 방식을 잊어버리면, 삶이 특정한 단계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쭉 이어지는 실 같은 것이라면. 오히려 계속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공연의 마지막 넘버인 'Louder than words'처럼, 고통을 예상하면서도 삶이라는 불덩이에 손을 갖다대 보는 것이다. 삶은 후회와 불안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살아낼 때에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틱틱붐>은 그렇게 부드럽게, 불안에 굳어 있는 우리의 등을 떠민다.
이 공연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