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나면 듣는 음악도 조금씩 바뀐다. 더워서 영 손이 가지 않던, 느리고 길게 이어지는 음악을 듣게 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재즈페스티벌에 가볼 생각이 들었던 건 분명 바뀐 날씨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 새로운 음악을 들으러 2025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을 찾았다.
이번 페스티벌은 무대가 크게 세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널찍한 광장에 설치된 주무대 '선셋 포레스트', 그 뒤로 빠져나오면 숲속 음악회를 연상시키는 작은 무대 '디어디어', 페스티벌 관객이 아니라도 서울숲을 찾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무대 '가든시어터'. 각각의 매력이 있는 세 무대를 오가며 재즈 페스티벌을 즐겼다.
처음으로 본 공연은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후지와라 사쿠라의 무대. 첼리스트, 기타리스트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작은 무대인 디어디어에서 진행된 공연은 아늑한 분위기였다. 사쿠라는 데뷔한 지 10년이 넘은 아티스트로 음악 스펙트럼도 다양한데, 재즈페스티벌인 만큼 이번에는 작년에 발표한 앨범 [Wood mood]의 곡들이 주를 이뤘다. 첼로와 기타라는 단순한 악기 조합에 흡입력 있는 목소리가 더해졌다. 앨범 제목에도 나무가 들어가고 첼로와 기타도 나무로 만드는데, 무대도 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니 자연과 함께하는 느낌이 물씬 났다.
사쿠라의 무대가 끝나고 가든시어터로 넘어가자 토마스 히와 퀀텟이 이제 막 공연을 시작한 상태였다. 사쿠라의 노래가 대부분 3-4분 길이에 가사가 있고 처음과 끝이 명확해서 대중음악의 문법에 익숙했다면, 폴란드에서 온 이 팀은 그야말로 재즈스러운 무대를 선보였다. 바이올린, 트럼펫, 베이스기타, 드럼은 보컬을 뒷받침해주는 대신 따로 또 같이,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제 갈 길을 갔다. 언제 어떤 악기가 끼어들지 진행 경로를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런 불확실성까지 합쳐져 재즈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신곡인 'Music we like to dance to'를 들려주겠다며 이 곡에는 자유롭게 춤을 춰도 좋다고 덧붙였는데, 실제 서너 살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무대 가까이 다가와 짧게 춤사위를 보여주는 귀여운 사건도 있었다. 서울숲을 찾은 모두에게 공개된 무대였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지 않았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가던 길에 멈춰서서 신기하다는 듯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도, 리듬을 타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게 재즈의 일부 같아서 즐거웠다.
이후 18인조 빅밴드인 어노잉박스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악단에 어울리는 차림새로 각자 악기를 든 멤버들이 천천히 걸으며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군중이 뒤를 따랐다. 제목은 금방 떠올리지 못해도 모두에게 익숙한 선곡들에 저절로 몸을 움직이고 곡조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감상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스탠딩존이 따로 없어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해가 물러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에는 선셋 스테이지로 돌아와 알 디 메올라(Al Di Meola)의 무대를 감상했다. 속주로 유명한 기타리스트답게 드럼 1대에 무려 기타 3대의 구성이었다. 공연 중반에 한 번, 끝나기 전에 한 번 잠깐 인사와 함께 멤버 소개를 했을 뿐 별다른 말없이 기타 연주를 이어갔다. 아티스트의 쇼맨십이 무대의 일부가 되는 락/대중음악 기반의 페스티벌과 달리 악기 하나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는 것이 재즈페스티벌이었다. 살면서 1시간 동안 기타 소리만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볼 일이 있었을까?
해가 물러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에는 선셋 스테이지로 돌아와 알 디 메올라(Al Di Meola)의 무대를 감상했다. 속주로 유명한 기타리스트답게 드럼 1대에 무려 기타 3대의 구성이었다. 공연 중반에 한 번, 끝나기 전에 한 번 잠깐 인사와 함께 멤버 소개를 했을 뿐 별다른 말없이 기타 연주를 이어갔다. 아티스트의 쇼맨십이 무대의 일부가 되는 락/대중음악 기반의 페스티벌과 달리 악기 하나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는 것이 재즈페스티벌이었다. 살면서 1시간 동안 기타 소리만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볼 일이 있었을까?
어느덧 다가온 마지막 순서, 모두가 숨죽여 헤드라이너를 기다렸다. 아마 이 무대만을 위해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도 많았을 것이다. 기다림 끝에 이소라가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소라는 떼창을 들어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공연을 시작했지만, 한 소절을 듣자마자 압도당해 아무도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이후 약 1시간은 물처럼 흐르는 목소리를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그 안에 3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특히 좋아하는 7집의 '트랙6'과 '트랙9'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관객도 아티스트도 스스로를 불사르는 페스티벌을 나 역시 좋아하지만, 때로는 그런 분위기가 부담스럽거나 피곤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처음 가본 재즈페스티벌은 그동안 가봤던 락/대중음악 기반의 페스티벌과는 달리 여백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음악과 음악 사이, 무대와 관객 사이를 터질 듯이 꽉 채우지 않아도 마음이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미지근한 온도, 좀 더 느린 선율, 좀 더 작은 이야기로도 이만큼 행복할 수 있다.
다른 페스티벌에 왔다가 돌아갈 때 모든 걸 쏟아낸 탓에 '잘 풀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번 재즈페스티벌은 좋은 것들을 내 안에 '잘 담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을 담았을까. 개성 강한 악기들의 소리가 부딪히는 순간, 아티스트의 수줍은 인삿말, 첼로 소리 뒤로 바람에 떨어지던 나뭇잎. 작은 풍경이 모여있던 이 날의 기억이 남은 계절을 살아가는 데 큰 보탬이 될 것 같다.
이 공연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