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홍수 속에서 펜을 드는 이유
모든 것이 화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메모도, 일정도, 생각도. 손가락이 터치스크린을 두드리거나 키보드를 누르는 것으로 거의 모든 기록이 완성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노트와 펜을 찾는다. 손끝에 잉크가 묻고, 종이에 내 필체가 남는 그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손으로 쓸 때 뇌는 다르게 작동한다. 연구들이 그것을 말하지만, 연구를 몰라도 경험으로 안다. 같은 내용을 타이핑할 때와 손으로 쓸 때, 기억에 남는 정도가 다르다. 생각이 정리되는 방식도 다르다. 타이핑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손글씨는 느리고 그 느림이 오히려 사유를 깊게 만든다.
파이썬으로 자동화 작업을 배우는 것처럼 - 반복 작업을 코드로 해결하는 방식이 디지털 효율성의 극단이라면 - 손글씨는 그 반대편에 있다. 비효율적이고 느리지만, 그 비효율 속에 가치가 있다. 자동화할 수 없는 무언가가 손끝에 있다.
디지털이 모든 것을 대체할 것처럼 보이던 시대가 있었다. 종이책은 사라질 것이고, 손글씨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작용처럼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만년필을 쓰는 사람들이 늘고, 종이 다이어리가 다시 팔리고, 손편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것이 단순한 복고 취향만은 아니다. 디지털 피로감이 쌓일수록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화면 속의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사라지고, 쉽게 복사되고, 쉽게 수정된다. 그 가변성이 불안감을 만들어낼 때, 손으로 쓴 노트의 고정성이 위안이 된다.
손으로 씨앗을 심는 것과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닮아있다. 둘 다 느리고, 둘 다 몸이 개입하고, 둘 다 즉각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베란다에서 상추를 키우는 일처럼, 손글씨도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행위다. 어느 날 문득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졌을 때의 충만감은, 텃밭에서 처음으로 수확한 채소를 들고 서 있을 때의 감각과 비슷하다.
3월 텃밭에 씨앗을 파종하는 것처럼 3월에 새 노트를 시작하는 것도 일종의 파종이다. 지금 심는 것이 언제 어떤 형태로 결실을 맺을지 알 수 없지만, 심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지금 써두지 않으면 생각은 그냥 사라진다.
나는 가끔 10년 전 노트를 꺼내 읽는다. 그때 내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어떤 것들이 중요했는지. 지금의 나와 완전히 다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놀랍도록 비슷하기도 하다. 그 연속성을 확인하는 것이 자아를 이해하는 방법이 된다.
디지털 파일도 저장되지만 그 연속성이 다르게 느껴진다. 컴퓨터를 바꾸고, 앱이 업데이트되고,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파일은 사라지거나 접근 불가능해진다. 손으로 쓴 노트는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다. 전원이 필요 없고, 인터넷이 없어도 된다. 그 단순함이 오래 살아남는다.
손끝에서 시작되는 기록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기술이지만, 가장 오래된 기술이기도 하다. 인류가 동굴 벽에 손자국을 남긴 것에서 지금의 만년필로 이어지는 그 긴 흐름. 나는 그 흐름의 어딘가에 나를 위치시키며, 오늘도 노트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