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사실 별로 없다
노션을 처음 열었을 때 드는 생각은 대체로 두 가지다. "이게 뭐지?" 아니면 "이거 어떻게 쓰는 거지?" 둘 다 같은 말이긴 한데,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전자는 당황, 후자는 좌절에 가깝다.
노션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다. 텅 빈 화면에 "/" 하나 치면 수십 개의 블록 옵션이 쏟아지고, 사이드바에는 워크스페이스니 데이터베이스니 하는 단어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미 잘 쓰고 있는 사람들의 화면을 보면 감탄이 나오다가도, 내 화면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건 솔직히 어디서나 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노션만큼은 진짜로 해당되는 얘기다. 목적 없이 노션을 배우려 하면 기능 설명만 읽다가 지쳐버린다. "나는 일정 관리를 하고 싶다", "독서 기록을 남기고 싶다", 이 한 문장만 있으면 출발점이 생긴다.
나는 처음에 노션으로 쇼핑 목록을 만들었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페이지 만들고, 텍스트 블록 치고, 체크박스 추가하고. 이 세 가지만 해봤는데 노션의 핵심 동작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다.
복잡한 템플릿은 나중에 봐도 된다. 처음부터 남들이 만들어놓은 화려한 템플릿을 가져와서 시작하면, 내가 뭘 만지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쓰게 된다. 그러다 뭔가 고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손을 못 댄다.
노션의 모든 것은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텍스트도 블록, 이미지도 블록, 체크박스도 블록, 표도 블록. 마우스로 끌어다 순서를 바꿀 수 있고, "/" 키로 언제든 새 블록을 추가할 수 있다.
이걸 이해하고 나면 노션이 갑자기 다르게 보인다. "어, 이 문단을 저쪽으로 옮기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노션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다.
데이터베이스는 아직 몰라도 된다. 테이블이니 갤러리니 캘린더 뷰니 하는 것들은 노션에서 가장 강력한 기능이지만, 동시에 초보자를 가장 빨리 포기하게 만드는 기능이기도 하다. 텍스트 페이지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걸 먼저 경험하는 게 순서다.
생산성 도구를 잘 쓰려면 결국 기기 환경 자체도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한다. 노션을 열 때마다 불필요한 탭이 수십 개 펼쳐져 있다면 집중이 안 된다.
첫 번째는 지나치게 완벽한 구조를 짜려는 욕심이다. 페이지 하나 만들면서 카테고리 체계를 다섯 단계까지 설계하다가 그냥 지쳐버리는 경우. 처음엔 페이지 하나에 다 때려박아도 된다. 나중에 정리하면 그만이다.
두 번째는 남의 노션 구경이다. 유튜브에 "노션 셋업" 영상이 수백 개다. 그걸 보면서 감탄하다가 내 노션 열면 초라해 보이고, 결국 따라 만들다가 포기한다. 남의 시스템은 남의 생활에 맞게 설계된 것이다.
세 번째는 모든 걸 노션으로 하려는 시도다. 일정 관리, 독서 기록, 업무 문서, 가계부, 레시피, 여행 계획을 전부 노션에 넣으면 처음엔 뿌듯하지만 금방 관리가 안 된다. 내가 진짜 쓸 것 한두 가지만 골라서 시작하는 게 낫다.
개인적으로는 메모 앱이나 캘린더와 병행해서 쓰는 걸 추천한다. 미니멀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도구도 욕심부리지 않는 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다.
텍스트 블록, 체크박스, 토글. 이 세 가지만 쓸 줄 알아도 할 수 있는 게 꽤 많다. 오늘 할 일 목록, 회의 메모, 아이디어 정리, 읽고 싶은 책 목록. 여기까지는 복잡한 기능이 전혀 필요 없다.
토글은 특히 쓸모가 있다. 제목 클릭하면 내용이 접혔다 펴지는 구조인데, 긴 내용을 정리할 때 페이지가 지저분해지지 않아서 좋다. 이 기능 하나 알게 된 다음부터 노션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데이터베이스는 진짜로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 때 건드리면 된다. 예를 들어 책 읽을 때마다 제목이랑 날짜랑 별점을 기록하고 싶어지면, 그때 테이블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학습이 된다. 필요에서 출발한 공부가 설명서에서 출발한 공부보다 훨씬 빨리 몸에 붙는다.
가성비 이어폰 하나 고르는 것도 선택의 연속이듯, 노션도 뭘 버릴지 먼저 정하는 게 수월하게 시작하는 방법이다. 모든 기능을 익히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오히려 잘 쓰게 된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지금도 노션을 열면 쓸데없이 새 기능을 눌러보는 버릇이 있다. 아이콘 연결이니 AI 블록이니 하는 것들. 어떨 때는 쓸 만하고, 어떨 때는 그냥 예전 방식이 편하다. 결국 도구는 내가 주인인 거지, 도구가 나를 이끄는 게 아니다. 노션을 그냥 메모장처럼 쓰다가 언젠가 더 쓰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배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