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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Mar 19. 2024

(3) 13살의 아버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발랄한 대학가를 지나 부경대학교 증명서 발급과를 찾아갔다. 담당자는 한 달 전 나와의 통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이름의 학적부가 2개인 것이 이상해서 그렇지 않아도 일찌감치 확인을 위해 서류를 떼어 보았어요.”

친절한 담당자 선생님이 내 앞에 두 장의 서류를 보여주었다.

“보이시죠? 하나는 토목과, 하나는 기계과입니다.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여기 보니 보호자 성명이 같네요.”

보호자는 '부산 육군회관 내'에 거주하는 '군인'이었다.

“맞습니다. 저희 큰 아버지세요.”

아래 칸에 있는 보증인도 같은 주소의 군인이었다.

“여기 두 개의 연도를 보니 3년 졸업하고 바로 다시  입학이거든요.”

“그럼 고등학교 3년을 졸업하고 다시 재입학이라는 말씀인가요? 복수 전공 같은 건가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잠시만요.”

담당자가 컴퓨터를 확인하고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딱 5년 동안 여기가 중고등학교 통합 학제였네요. 그러니까 중학교는 토목과 졸업, 고등학교는 기계과 졸업입니다. 여기서 중고등학교 6년 다니신 겁니다."


  두장의 학적부가 내 앞에 놓였다. 학적부의 모든 연도가 단기로 표기되어 있었다. 입학과 졸업 시기도 지금과 달랐다. 입학은 9월, 졸업은 7월. 마치 미국 학제처럼.

“대리인 확인 서류는 가져오셨죠?”

나는 신분증과 상세 가족 관계 확인서와 아버지의 제정증명을 전했고 담당자가 원본 서류를 출력하는 동안 아버지의 생활 기록부 중 중학교 것부터 살펴보았다. 약식 한자가 많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알고 있는 한자를 총동원해서 읽어보았다.


  ‘경력 특질’ 항목에는 ‘00 국민학교 졸업’, ‘성격 온순’, ‘성적 보통’이라 적혀 있었다. 1, 2, 3학년 성적표에는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이 있었는데, 필수 과목은 국어, 사회생활, 수학, 과학, 체육, 실과, 음악, 외국어, 미술이었다. 유일한 선택과목은 ‘교련’이었다. 나는 성적표를 통해 아버지가 중학교 시절에 음악, 미술, 체육을 좋아하는 예체능형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득 아버지 생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맞다. 공무원의 삶을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히 살았던 아버지는 그랬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좋아했고,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얼리 어댑터였고, 희귀한 LP와 고흐의 화집을 모으곤 했던 아버지.


  아버지가 가장 관심이 없거나 어려워한 과목은 수학이었다. 내가 수학을 그렇게 싫어하고 못 했던 이유가 아버지였다니. 아버지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오른 과목은 사회생활과 과학이었다. 점점 성적이 올랐지만 그렇다고 우등생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1학년에는 결석 1일, 2학년에는 결석 2일, 3학년에는 결석이 60일이었고, 두달 가까운 결석의 사유는 ‘사고’였다. 16살 아버지에게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생활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는 대부분 ‘양호’였고, 신체 발달도 1학년의 '보통'에서 3학년 '건강'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인성 항목은 3년 내내 ‘쾌활’이었다. 협동 항목도 3년 내내 ‘우애적’, 적극성은 ‘좋음’, 흥미 항목은 ‘없음’에서 ‘있음’으로, 언어 항목은 3년 내내 ‘명징’, 동작도 3년 내내 ‘민첩’이었다. 지금과 다른 생활 기록부 항목이 신기했고 흥미로웠다. 나는 마치 내 아이의 성적표를 보며 안도하듯, 그때의 아버지가 외지에서 씩씩하게 성장한 기록이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검은색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남학생의 사진이었다. 13살의 아버지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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