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가울(Gawool)
18만 창작자 회원이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는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를 통해 노트폴리오 픽으로 선정된 작업의 창작 과정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notefolio interview with 가울
누구에게나 삶을 지탱할 힘을 주는 빛나는 기억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으로 남아있고, 누군가에게는 사진 한 장으로 남아있기도하고, 누군가에게는 편지로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창작자라면 빛나는 기억을 기록하는 방식이 존재할 것이다.
오늘은 본인이 경험한 빛나는 기억을 수채로 그려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게 만드는 작가이자 여행가인가울을 소개한다. 17개국 45도시를 돌아다니며 경험한 빛나는 기억을 담은 가울의 그림과, 그 기억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는 라잇풀 스튜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가울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여행가인 가울입니다. 여행의 기억을 글과 수채로 기록하고 있어요. 작업과 함께 작업실 겸 쇼룸인 ‘라잇풀 스튜디오’를 마포구 망원동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인전 “햇살의 표정, 밤의 기억”을 진행하셨더라고요. 두 번째 개인전인 만큼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떠셨나요?
지난 3월, 서촌의 갤러리 TYA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긴장감과 부담감이 크게 다가왔어요. 작업 경력이 더 쌓인 만큼, 오랜만에 보여드리는 전시인 만큼 정말 좋은 전시를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자꾸 텅 빈 전시장에 혼자 서있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초조해지곤 했지만, 이미 전시를 하기로 결심했으니 막연한 상상에 흔들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관람객분들이 기분 좋은 감정을 가지고 떠날 수 있기를,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는 전시이기를 바랐어요.
걱정과는 달리 이번 전시는 제게 참 많은 힘이 되었어요. 작가 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혼자 증명해야 한다는 감각에 외로울 때가 있었는데, 전시장에 찾아주신 분들이 전해주신 값진 말에서 ‘내 그림을 응원해 온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내 작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거든요. 당시에 뉴욕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그림을 기대하겠다고, 몸 조심히 다녀오라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여행을 응원해 주셨어요. 여행을 응원받으며 떠난 건 처음이었어요. 전시를 마무리하며 일기에 그 감동을 적었을 만큼 큰 힘이 되었고, 여행 내내 그 응원을 기억하며 많은 영감을 쌓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북페어 등 힘드실 텐데도 불구하고 매년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시는 것 같아요. 가울님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있나요?
저의 모든 활동은 ‘내 그림을 알리고 싶어서’라는 마음에서 출발해요. 늘 생각하지만 이렇게 재능 있는 분들이 많은 세계에서 제 그림을 주목해 준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에요. 그런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행사는 늘 찾아가고 있어요. 스튜디오 역시 그런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능한 많은 분들께 제 그림을 알리고 싶어요. 인상 깊은 순간들은 이전에 찾아오셨던 분들이 다시 한번 찾아주시고, 그리고 또다시 반가운 얼굴로 찾아오시는 때예요.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돼요.
운영하시는 스튜디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라잇풀스튜디오의 외관은 따스한 노란빛으로 물든 게 가울님의 그림과 굉장히 결이 비슷하고, 잘 어울립니다. 오프라인 공간을 꾸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망원동에서 라잇풀 스튜디오를 운영한 지도 지난 5월로 꼭 2년이 되었네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게 된 건 코로나 영향이 컸습니다. 아무래도 여행 작가인데 여행을 가지 못해 활동에 어려움을 느꼈고, 일러스트레이터가 활약 할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어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었어요. 그때 지인분의 권유에 매물로 나와 있던, 지금 스튜디오 공간을 둘러보게 되었고 어쩌면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공간을 계약하고 그림을 소개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고, 지난겨울 한차례 리모델링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여행에서 수집했던 물건들을 비롯해 제 취향을 듬뿍 담아 놓은 공간이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곤 해요. 가장 자랑하고 싶은 공간은 원화가 가득한 벽과 이어진 엽서 공간이에요.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 서면 제 그림으로 둘러싸인 시야를 가지게 되거든요.
가울님은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그리시는 것 같은데, 수채화가 가진 장점에 대해서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수채화는 서로 다른 색이 만나 물속에서 어우러지며 예상하지 못한 독특한 색과 질감을 가지게 된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투명한 감성이 가득하고요. 또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비쳐서인지, 동시에 따뜻한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런 점이 제가 그리는 작업의 감성과 잘 맞아 지금까지 계속 수채화만 사용했는데, 아직도 수채화의 매력을 다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 다른 재료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수채화를 더 사용해 보고싶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더불어 여행가라는 호칭을 사용하실 만큼 다양한 지역을 여행해 보셨는데, 딱 한 곳만 꼽아서 소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그 여행지와 관련된 작업도 함께 소개 부탁드려요.
제 그림 중 많은 작업의 소재가 되었던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를 소개하고 싶어요. 그라나다의 기억을 담은 작업 중 ‘Good morning and Good night’과 ‘그라나다의 고양이’는 제게 특별한 작업들인데요.
첫 번째 작업은 그라나다를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그린, 애정 하는 도시를 향한 작별과 재회의 약속을 담은 작업이에요.
또 ‘그라나다의 고양이’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그린 작업인데, 특별한 순간의 기억과 함께 제가 한 달간 머물렀던 방의 풍경이 담겨있어 제게 애틋한 그림입니다.
가울님의 지난 작업들을 훑어보면, 그림 뿐만 아니라 글로도 이야기를 전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써온 글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주실 수 있나요?
2022년 ‘라잇풀레터’라는 이름의 뉴스레터를 일 년간 발행했었어요. 올해 5월에 출간한 ’햇살의 표정, 밤의 기억‘ 작품집을 위한 에세이 레터였는데, 여행에 대한 추억과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한 글들을 실었습니다. ’글 쓰는 행위‘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많은 수의 글을 쓰고 지우길 반복했어요. 적힌 채 공개되지 않고 사라진 글들이 너무 많아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좋아했던 만큼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쩌면 그림보다 더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림은 관람자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의도하지 않았던 해석을 만들어 내기도 해서 조금은 스스로를 감출 수 있어 덜 부끄럽지만, 글은 정말 나의 세계를 오역 없이 고스란히 드러내는 기분이어서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곤 했어요. ‘정말 이게 최선인가?’라는 고민에 글을 공개하길 망설였지만 책을 만들기 위해선 그 기분을 이겨내는 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공개하는 데에 익숙해졌던 것처럼요.
그래서 고민 끝에 뉴스레터의 형식을 빌리게 되었고 매월 1개의 레터를 발행하기로 약속했어요. 발행일을 약속하니, 생각했던 대로 계획한 양의 글을 쓸 수 있었어요. 매번 마감 때마다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했지만 ‘이게 오늘 할 수 있는 내 최선이야!’라는 마음으로 발행 버튼을 누르곤 했어요.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제가 쓰고 싶은 영역의 글을 더 많이 읽게 되었어요. 에세이와 시를 이전보다 더 많이 읽게 되었고,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은 연거푸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쓰지?‘라며 혼자 감탄하곤 합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 문장을 쓸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글과 그림은 제 안에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서로 다른 영역이에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글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정리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며 적었던 일기와 노트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아요. 또 그림을 그리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보관하기도 하고요. 글로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지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올 3월, 스타벅스에서 소개한 봄을 가득 담은 “One romantic spring day” 시즌 상품의 아트워크를 작업하셨쬬! 스타벅스에서 우연히 보게 돼 놀란 기억이 있어요. 아트웍이 MD에 입혀 져국전 스타벅스에 소개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셨었나요?
무척 행운 같았던 순간이었어요. 작업을 의뢰받았던 계기가 저에겐 전화위복 같았거든요. 코로나 시기 여행을 떠나지 못해 그림의 소재를 찾고 있었을 때, 주변의 작은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대, 작은 꽃에게’라는 이름으로 연작 작업을 시작했고, 그리다 보니 제법 많은 수를 그리게 되었어요.
그때 마침 스타벅스 디자인팀에서 수채화 느낌의 꽃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는 작가를 찾고 있었다고 연락을 주며 포트폴리오를 요청했어요. 코로나 전엔 꽃을 그림의 소재로 그리지 않았어서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어요.
디자인팀 분들과 협업하며 최선을 다해 작업했고, 의사소통이 무척 간결하고 체계적이어서 작업하기가 무척 수월했던 기억이 나요. 길었던 팬데믹이 마무리되었던 올해 봄에 MD가 출시되었고, 한국을 포함해 태국, 일본, 필리핀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 제 작업이 들어간 제품이 소개되는 모습을 보며 무척 행복했어요. 많은 축하를 받기도 했고요! 작업 자체도 만족스럽지만 저에겐 개인적으로 막막한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 일들이 뜻밖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기억되는 작업이에요.
가울님의 SNS 문구 ‘빛나는 기억을 그립니다’와 라잇풀 스튜디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빛나는 기억이라는 키워드가 작가님의 작업을 관통하는 것 같아요. 가울님이 오랜 시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빛나는 기억은 어떤 기억인가요?
제게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라나다 산크리스토발 전망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던 순간이에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엇을 애정 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준 순간이었거든요. 당신의 하루는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하던 석양의 목소리가 매일의 하루를 빛나게 해줘요. 제 작업은 석양의 순간처럼 빛나는 작은 순간들을 그림으로써 우리의 삶에 이토록 빛나는 순간이 있고, 그 하루를 쌓아가는 매일은 아름답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어요. 앞으로도 살아가며 얻은 다정하고 빛나는 이야기들을 통해 하루의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소중한 이야기들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사와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릴게요.
저와 비슷한 종류의 작업을 하고 계신 분들께 응원의 말을 남기고 싶어요. 제가 작가 생활을 막 시작할 때엔 ‘2년, 3년만 버티면 나를 알아줄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보다 빠르게 주목받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이제야 조금씩 궤도를 걷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는 데에 7년이란 시간이 걸렸네요.
만약 홀로 작업하며 외로운 시간을 견디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림을 계속해서 공개하며 그 시간을 누군가와 공유하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지난 시간 작가로서 길을 찾아 헤매는 동안 그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건 사람들이 주었던 귀중한 피드백이었거든요. 사람들과 마주하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앞으로 가야 할 길고 먼 길 역시 지금까지의 경험과 새로운 경험이 쌓으며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 거예요.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늘 저의 그림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요즘만큼 행복하게 작업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순간의 기쁨을 작업으로 담아내며, 앞으로도 좋은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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