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겸 치킨을 먹는다.
핸드폰으로 주문한다.
선택을 기다리는 맛의 정체는
선명한 듯 잡히지 않는다.
이만 원 근방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이 가격이 곧 실물경제다.
어떠한 경제 통계보다 정밀하고 일상에 닿는다.
양계장에서부터 시작해 배민 라이더스로 끝나는 자본 사슬의 결과다.
빠듯한 맞벌이 부부의 자녀가 애원하는 가벼운 사치이고 비정규직 1인 가구 청년의 비싼 만찬이다.
배달된 치킨을 열 때 둘러앉은 정겨움과
며칠을 절약해 버틴 달콤함이 있다.
그것은 배달하는 자의 양식이 되고
제조하는 치킨집 사장의 밥벌이가 된다.
비 오는 퇴근길 사고로 엎어진 배달 오토바이 주변에 뒹구는 치킨 조각과 소스가 보였다.
라이더는 얼굴에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할 수 없다.
멍하게 경계석에 앉아 일어날 힘이 없다.
건당 천 원을 번다.
그는 누구의 아비일 수도 아들일 수도 있다.
코로나에 쫓겨난 직장 대신 얻은 밥 벌일수 있고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일 수도 있겠다.
살아있으니 먹고 먹으니 살아간다.
없이 사는 형제에게 대가 없이 건넨 치킨으로
전국이 따뜻하다. 젊은 사장이 건넨 치킨 조각이 어린 형제에겐 목숨이 된다.
처절한가.
치킨 한 조각이.
우린 잊고 있지 아니한가.
먹음으로 삶이 이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