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고양이의 빗 개그 (Comb gag), 또는 빗 구역질(Comb retching)로 알려진 현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쓰는 머리빗의 날 부분을 손으로 긁어서 내는 독특한 소리를 고양이에게 들려주면 혀를 날름거리며 마치 구역질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지요.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많은 고양이들이 같은 소리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국내에서도 SNS 등에서 간혹 ‘고양이 고장 내는 방법' 같은 식으로 유머러스하게 소개되기도 합니다.
고양이가 빗을 긁는 소리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이 반응이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의 일종’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사람들은 '그런 반응이 있더라' 정도로 알고 있을 뿐 수의학적인 연구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최근에 수행되어 참고할만한 연구가 있습니다. Feline audiogenic reflex seizures (FARS), 그러니까 소리에 의해 유발되는 발작 증상에 대한 논문인데요.
http://journals.sagepub.com/doi/pdf/10.1177/1098612X15582080
공개 논문으로,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도 특정한 TV 소리나 시각적 자극에 의해 발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유사한 증상이 강아지는 물론 마우스, 래트, 햄스터 등의 동물들에서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다만 이처럼 환경 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신경계 질환은 원인도 다양하고 증상이나 질병의 기전도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기에, 체계적으로 연구하기가 쉽지 않아 의미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FARS를 가진 고양이는 대개 10~19세 사이의 노령묘인 경우가 많고 높은 주파수를 가진 시끄러운 소리에 의해 발작이 유발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금속 호일을 구기거나, 종이백을 구기거나, 컴퓨터의 키보드 소리나, 벨크로, 가스레인지, 심지어 흐르는 물소리에 의해서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죠.
대부분의 경우 발작의 증상 자체는 아주 심각하지 않았고 악화되는 경향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보호자들이 FARS에 의해 고양이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고 응답했지만, 발작 증세가 2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체중이 줄어들면서 실제로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물론 영상 속 고양이들이 보이는 빗 개그 반응이 FARS에 의해 나타나는 국소적인 발작 증세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둘 사이에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있기에, 고양이를 너무 자주 고장 내지 않는 편이 안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 본 콘텐츠는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가 노트펫에 기고한 칼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에디터 김승연 <ksy616@inb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