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처방전

나 자신을 아는 힘

by 서나송

작년 이맘때, 바다가 보고 싶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고 단정지은 현실 몇 가지가

나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던 때였다.


그래도 그냥 바다만 보면 살 것 같았다.

그깟 바다에 시간과 돈을 들이는 일,

죽을 것처럼 아픈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요란하게 구나…싶다가도

늘 미뤄졌던 내 마음이 유난히 안쓰러워 보였던 그날,

나는 과감히 기차표를 끊었다.

그리고는 나 나름대로 여행의 제목을 붙였지.

<나를 위한 처방전>이라고.


딸 둘의 손을 잡고 기차에 오르던 순간부터 알았다.

내가 나에게 내린 처방전이

아주 적기였다는 것을.


오직 나를 위해 떠났고,

내가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만 했던

지극히 이기적인 부산 여행.

하지만 나를 먼저 살피니

마음의 여유가 아이에게까지 흘러갔다.

불평불만이 단 한번도 없었던,

모녀 셋이 모두 편안했던 여행.

2박 3일 동안 우리에게는

뭘 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올해도 계획없이 부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작년의 여행이 아이도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또 가고 싶다고 졸라대는 아이들을 위해

이번엔 이타적인 여행을 목적하여.


그때의 처방전의 효력이

일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걸까?

’오직 나를 위함’이 아니어도 너무 괜찮았다.




감기는 매해 걸리는 것이 아니다.

면역력이 있다면

몸을 탐하는 바이러스를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


마음의 감기도 그런 것 같다.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고열로 앓아눕기 전에,

고용량의 비타민처럼

가볍게 복용할 수 있는

나만의 처방이 필요하다.


독한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되도록.

아니, 쓰기 전에.


이번 여행이

오직 아이를 위한 여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남아있는 면역력을 좀더 보충하고 온 느낌이다.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 선택 덕분에

나는 바다를 좀 더 가볍게 떠올릴 수 있고,

필요할 때

기차표를 끊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위한 셀프 처방전.

어쩌면 의사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일지 모르겠다.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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