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온도, 서두름의 대가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아침.
"돼지국밥 먹으러 가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은 메뉴를 떠올렸다. 사흘 동안 벼르던 돼지국밥.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 마침내 마음속에 품어온 그 국밥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동 동선 때문에 미뤄왔던 터라 아이들도 들뜬 표정이었다.
평이 좋은 식당이라 그런지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난 뒤에도 식당 앞은 길게 늘어선 줄로 북적였다. 배고픔에 조급해진 나는 다른 곳을 가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단호했다.
"그냥 기다리자. 돼지국밥 꼭 먹고 싶어!"
이미 부산에 오기 전부터 마음먹었던 메뉴. 배가 고프다고 해서 아무 곳에서 대충 때우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결국 우리는 테이블링 앱에 이름을 올리고, 가게 앞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언제나 어려운 과제다. 당장의 허기를 채우고 싶은 욕구와, 진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인내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늘 갈등한다. 하지만 그날 아이들의 마음가짐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빨리 먹을 수 있는 다른 선택지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것. 아이들은 즉각적인 만족보다 진정한 욕구를 선택했다. 기다림은 불편하지만, 그 가치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드디어 맛본 돼지 국밥. 만약 서두르느라 다른 곳을 택했다면, 돌아와서도 아쉬움이 남았을지도 모를 만큼 맛있는 국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서두름'은 음식 앞에서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긴 기다림 끝에 받아 든 국밥이 주는 설렘에 한 숟가락을 떴다가 혓바늘이 돋을 만큼 뜨거운 맛을 봐야 했다. 돌 냄비 속 바글바글 끓는 국밥 앞에서도 나는 또 조급해졌던 걸까. 아이들의 목젖이 데일 새라 급히 주의를 주었다. "엄청 뜨거워~ 앞 접시에 덜어서 호호 불며 식혀 먹어."
갓 끓인 국이 뜨겁다는 걸 알면서도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간 건, 육신이 이성을 눌러버릴 만큼의 성급함 때문이었다. 끓는 국밥 위 아직도 부글거리는 기포가 열정이라면 기다림은 지혜였다. 뜨거운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데이듯이, 인생에서도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다칠 수 있음을 아는 지혜. 조급함이 나를 다그칠 때, 사실은 잠시 기다리고 식혀야 할 순간 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삶에서 종종거리는 순간들이 비일비재하다. 아침 등교 준비하며 느긋한 아이들을 재촉할 때,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기다리지 못해 대신해 줄 때, 육아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불안해질 때는 조급함이 나도 모르게 엄습한다. 뭔가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길 때,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주변 사람과 비교하며 나만의 속도를 무시할 때는 두려움마저 더해진다. 서두르는 마음의 근원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걸까? 뭔가를 놓칠까 봐, 부족할까 봐,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내는 걸 보면 말이다.
생각보다 자주 남들의 속도에 휘둘리며 더 빨리, 더 많이, 더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정작 '내 삶의 주인공인 나'는 잊고 살 때가 있다. 그런 내게 ’서두르지 말자’라는 단순한 문장은 또 하나의 처방전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느리게 사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나만의 리듬을 찾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기다림은 조급함 속에서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의 진정한 욕구와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긴 기다림 끝에 맛있는 돼지국밥을 맛볼 수 있었던 건, ‘꼭 먹고 싶다’는 마음을 끝까지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뜨거운 국밥을 천천히 식혀야 제 맛을 알 수 있듯,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속도 안에서 흘러갈 때, 기다림이 주는 깊은 맛을 비로소 음미할 수 있으니까.
부산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그 국밥을 떠올릴 것이다. 시간과 기대, 그리고 기다림의 온기가 스며든 한 그릇이었으니까.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