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삶을 보느라 내 하루를 살지 못한다면

각자의 자리에는 저마다의 빛이 있다

by 서나송


멀리서 바라본 감천문화예술마을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정성 들여 칠한 물감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간이 덧입혀진 색이었다. 언덕을 따라 층층이 놓인 집들은 저마다 다른 색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튀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오래 버틴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안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풍경은 조금 달라 보였다. 같은 듯 이어진 집들이었지만, 오래 살아온 시간만큼의 차이는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굳이 하나하나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곳에는 같은 하루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비슷한 공간 안에서도 삶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종종 비슷해 보이는 삶에 속아 넘어간다.

같은 나이, 비슷한 환경, 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마음까지 비슷할 거라 쉽게 짐작한다. 가족에게는 그 기대가 더 크다. 하지만 살아보니 함께 산다는 건 닮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다름을 매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보다, 비슷할 거라고 믿어버린 마음 때문에 더 자주 어긋나는지도 모르겠다.


마을의 골목을 따라 걷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시야 끝에서 전혀 다른 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바다를 등지고 솟아오른 고층 건물들, 밤이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지는 도시의 불빛. 이곳의 집들이 만들어내는 낮고 따뜻한 색과는 전혀 다른 빛이었다. 서로 다른 세계가 이렇게 가까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저 빛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더 넓은 집, 더 편리한 생활, 더 나은 삶을 떠올릴까. 야경이 빛나는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그 삶을 부러워하기만 할까. 반대로 빛나는 저 빌딩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 마읗릐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그저 불편하고 오래된 풍경으로만 보게 될까.


감천예술문화마을



그 순간 ‘부러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한 장면만을 떼어내어 바라본다. 그 빛 뒤에 깔린 그늘과 무게는 애써 보지 않으며 내 멋대로 그들의 삶 전체를 단정짓는다. 높이 올라간 삶은 그만큼 더 많은 바람을 맞고, 낮게 머문 삶은 그 나름의 견뎌냄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 삶은 가볍지 않다.


골목을 내려오며 나는 내 마음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의 삶을 부러워하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그 부러움 속에는 내 삶에 대한 어떤 불만이 숨어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부러움은 늘 아주 사소한 틈에서 시작됐다. 누군가가 이미 가진 것을 나는 아직 갖지 못했을 때, 나아지지 않는 나의 약점이 또렷해질 때, 다른 이는 그들의 삶을 너무 잘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삶의 부족한 부분만을 확대해 바라보곤 했다. 이미 충분히 살아내고 있는 것들은 쉽게 지나친 채로.


혹시 나는 내 자리에서 충분히 빛나보기도 전에, 다른 빛을 먼저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오늘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감천의 집들은 저마다 다른 색을 하고 있었지만, 그 다름이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이 덕분에 마을은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누구 하나 튀지 않으면서도, 누구 하나 지워지지 않는 풍경. 그 모습은 마치 삶도 그렇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같은 높이로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온 시간만큼의 색이면 충분하다고.


중요한 것은 다른 삶을 동경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어떤 빛을 낼 것인가를 묻는 일인지도 모른다. 크지 않아도 좋고, 눈부시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쉽게 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나를 속이지 않는 빛이면 충분하다. 내 마음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