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수고
'부산' 하면 '시장'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어깨를 스치는 사람들 틈새마다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밀려왔다. 코끝을 간질이는 익숙한 어묵 국물 냄새, 매콤 달달 고추장 냄새,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기름 냄새와 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간식이 한데 모인 듯한 풍경. 저마다 먹어보라며 기웃거리는 유혹들 사이로, 나는 어느새 아이보다 더 들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어묵 꼬치, 입술을 붉게 물들이는 쫀득한 빨간 쌀떡볶이, 튀김옷 바삭한 통통한 오징어 튀김, 양념에 찰싹 비벼낸 새콤한 비빔당면... 각기 다른 손길에서 만들어졌지만, 메뉴는 크게 다를 바 없는 가게들이 골목마다 늘어서 있었다. 눈에 보이는 차이라면 단지 줄의 길이었달까. 하지만 말이 없는 줄은 침묵 속에서도 많은 신호를 보냈다. 이 집이 얼마나 유명한지, 얼마나 맛이 있는지, SNS에선 또 어떤 찬사를 받았는지. 긴 줄의 끝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맛을 보장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은 듯, 오히려 약간의 우월감을 품은 얼굴로. 그 줄은 이미 하나의 증명서 같았다.
“여기, 믿고 먹어도 됩니다.”
나도 주저 없이 그 줄의 끝에 섰다. 기왕 먹는 거, 그래도 인기 있는 집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 어쩐지 그래야 ‘잘 먹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혹시 내 앞에서 재료가 마감되지 않을까 조바심 내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런데, 바로 옆. 같은 메뉴를 파는 집에서 커다란 솥뚜껑 위의 떡이 들러붙지 않도록 부지런히 뒤적이고, 또 뒤적이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뒤적여도 손님들의 접시로 옮겨질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어묵 국물의 뜨거운 김은 허공으로만 피어오를 뿐. 그곳에 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은 기다림을 싫어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뭘 먹어도 상관없는 사람일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쩐지 나 같았다. 화려하진 않아도 부지런히 솥을 저어 가는 그 손끝처럼,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줄이 생기지 않는 그 가게처럼, 나의 일상과 시간에도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춰주지 않았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창 아이를 키우느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삐 움직였지만, 그 시간이 보이는 성과로 남지 않았으니까. 연주를 하고, 글을 쓰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지만, 누군가 줄을 서 기다릴 만큼의 인기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SNS상의 인기는 팔로워와 조회수로 판단되는 걸까? 인기글은 메인 페이지 노출이고, 책은 판매부수이고, 독주회는 초대장보다 판매되는 티켓 수량, ‘엄마표’를 붙이려면 어디 내놓아 자랑할 만큼 아이들의 성취도는 있어야지. 나는 아니었다. 아니면 그 반대. 하지만, 그런 나도 애쓰고 있다는 것, 나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 가게도 그랬을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줄이었을 뿐,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는 집. 드러나지 않는다고 음식을 향한 시간들이 덜 가치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아직 빛을 발하지 않았을 뿐, 어쩌면 누군가의 입맛에는 더 잘 맞을지도 모를 어떤 맛들이 그곳에도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에 또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기 앞에서 우리는 저울질을 한다. 마음 무거웠던 나도 긴 줄 끝에 나를 세웠던 것처럼.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마음이 기울고, 검증된 것에 마음을 주는 사람. 우리는 종종 그렇게 산다. 그래야 실패할 확률이 적고,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마지막 날, 다시 시장을 찾았고, 줄 없는 가게로 들어갔다.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닌 내 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나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받아 든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졌다. 실망시키지 않았던 맛, 작은 의심이 미안하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 마음에 서지 않고, 남의 마음에 맞추어진 줄에 서있었다. 쏟아지는 정보 안에 정답처럼 보이는 선택, 검증된 길, 남들이 이미 증명한 삶, 늘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면서 말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법, 지루하지 않은 연주 프로그램. 잘 쓰는 글의 형식, 팔리는 콘텐츠의 방식 등등. 하지만 그렇게 긴 줄을 따라가다가, 정작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어떤 문장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정말 말하고 싶은지 잊을까 두려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서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을 만나게 될까.
긴 줄 끝에서 받아 든 그 음식이 기대한 만큼의 맛이 아닐 때도 많았다. 실패 확률이 적다는 이유로, 남들이 선택했으니까, 그 선택이 맞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냥 따라왔을 뿐인데, 막상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공허함.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정답일 거라 믿으며,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함께 줄을 서야 한다는 부담은 가질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나는, 그저 익숙한 줄에 서는 대신, 조용히 나만의 길을 찾아 걸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짧은 길도 있고, 조금 더 돌아가야 하는 길도 있고, 혹은 어떤 길 위에서 한참을 헤매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끝에 도착한 곳이 정말 나를 나답게 하는 길이었다면 정말 땡큐다.
그래서 이제는, 조용히 내 솥 안을 끓이는 마음으로 나를 살펴본다. 나만의 문장과 삶의 선율을 끓이며 나를 믿고 기다린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내 속에서 시작된 온기가 줄 서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과 마주했을 "진한 맛이 나네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며. 진심을 담아본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