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먹고 싶은 거 먹어
해변을 따라 걷는 아침은 그저 힐링 그 자체였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어둠에 가려졌던 윤슬은 눈부시게 반짝이며 제 모습을 드러냈다.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이 풍경을 매일 누리겠지. 문득 그 생각에 부러움이 스쳤다.
아침 메뉴로 선택한 건 미역국 정찬. 사실 나로서는 간단한 브런치 스타일로 빵과 커피를 즐겨도 좋았겠지만, 아이들을 위해 밥을 먹이고 싶었다. 실패 없는 메뉴이자, 부산에 왔으니 대충 때우는 식사는 하지 말자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기대한만큼 아침 한 상이 아주 맛있고 든든했다. 흰 쌀밥을 국에 말아 푹푹 떠먹는 아이들을 보니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흐뭇했다. 하지만 그저 '흐뭇함'으로 멈추고 싶지 않았던 건 왜일까? 날 위한 선택도 필요했다. 꼭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 마음은 이미 숙소를 나오기 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분명 식사 후 편의점에 들러 콘 하나씩 들고는 바다에 가자고 할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을 나오기 무섭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기 편의점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자!"
"아니, 꼭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어. 거기 가자~“
'그 카페엔 너희가 좋아하는 00콘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있거든. 예쁜 머그잔에 담긴 라떼를 마시며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싶어…‘ 라는 속마음을 꾹 눌러 담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래! 엄마가 좋아하는 카페 가자~ 우리도 거기 가고 싶어! 엄마 책 읽고 글 쓰고 싶구나?"
호텔을 나오며 백팩에 넣었던 책과 노트, 펜을 아이들이 눈여겨봤던 걸까. 순간 뭉클해졌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던 마음 이상으로 아이들은 이미 나를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페에 들어서자 공간을 가득 메운 커피 향은 이미 힐링이었다. 라떼에 들어갈 에스프레소 종류를 고르고 있는데 아이가 용돈을 꺼내 들며 건넨 말,
"엄마, 오늘 커피는 내가 사줄게. 꼭 사주고 싶어!“
고사리같은 손으로 반듯하게 접혀있던 용돈을 펼치며 계산대에 놓을 때, 내 선택이 결코 이기적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의 행복에 아이도 함께 기뻐했으니까.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는데, 나의 마음을 뒤로하고 상대의 마음을 먼저 들어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걸까. 내가 원하는 카페에 발걸음을 함께해 준 마음이 고마워 소중한 용돈은 사양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아이가 누릴 더 큰 행복을 내 마음대로 축소시킨 것 같아 아쉽다.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따뜻한 라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이 이야기했다.
‘좋다… 그치…?’
왜 그동안 내 마음을 우선에 두는 연습을 해오지 못했을까.
언제부터, 왜 나는 내 마음을 뒤로 미뤄두게 된 걸까.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그 말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 노력했다. 첫째인데다 배려가 미덕이라 배웠으니, 양보는 내게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배려하는 법은 몰랐다. 오히려 나를 챙기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처럼 여겨졌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배려는 헌신으로 변했다. 엄마에게 있어 늘 아이가 우선이라는 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내 욕구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괜찮아", "난 아무거나 좋아", "너희가 좋다면 나도 좋아"
이런 말들이 입에 붙어 버렸다. 정말 그런 마음이기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땐 내 진심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혹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너무 쉽게 나를 미룬 탓에 나조차도 내가 뭘 원하는지 흐릿해질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나도 좋아했던 음식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지?‘ 라는 물음에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내 마음을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묻어두었었던 걸까. 그 마음이 어떤 날엔 서운함으로, 때로는 억울함으로, 때로는 공허함으로 불쑥 불쑥 튀어나왔다. 이쯤이면 내 마음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서글프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나를 가장 몰라주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나를.
라떼의 따뜻함이 식어갈 무렵,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고 챙기는 것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내 마음을 우선에 두는 연습, 그것은 단순히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걸 말이다.
작은 메모지에 마음을 적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참 행복해.”
이런 소소한 순간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채울 수 있다니.
아이들은 더 큰 미소로 반응했다.
“엄마가 기분이 좋으니까 나는 더 행복해.”
내가 나를 먼저 챙긴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부족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관계속에서 조금 덜 희생한다고 해서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상대방에게 매번 맞추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단절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때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때와 방법 또한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나 스스로를 챙기면서도 누군가를 충분히 배려할 수 있고, 나만을 위한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내 마음을 우선에 두는 일이 때때로 어색할지라도,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연습임을 깨달았다.
카페를 나서며 결심했다. 이제는 조금 덜 미안해하며, 내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해변을 따라 돌아가는 길,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고 함께 불렀다.
"말을 해줘. 숨기지마~“
윤도현 밴드의 <흰수염 고래>.
우리는 그날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라도 알아서 너무 다행이다. 내 마음을 우선에 두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길이자, 그만큼 상대방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