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 : 살아남다 vs 살아내다

생존의 기술보다 중요한 ‘나’라는 지도에 대하여

by 서나송

길 위에서 비로소 마주한 낯선 거울


떠나기 전까지 수없이 망설였다.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란, 단순히 짐을 싸는 행위 그 이상이었으니까. 누군가의 끼니를 걱정하고, 내가 비운 자리의 공백을 계산하며, 죄책감과 해방감 사이를 수십 번 오갔다. 하지만 그 어렵고도 용기 있는 행보가 결국 나에게 가장 큰 지혜를 선물해 줬음은 확실하다.


길 위에서 만난 나는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한없이 따뜻했다. 일상의 소음이 차단된 그곳에서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건반 앞에서 악보를 해석하듯, 나는 내 삶이라는 악보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정말로 웃는 사람인가?", "지금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낯선 풍경은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 끝에 마주한 답들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려주는 선명한 이정표가 되었다.


10%의 생존법과 100%의 삶


세상은 참 각박하다. 서점에 가도, SNS나 유튜브를 보아도 온통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이걸 안 하면 도태된다", "지금 당장 이걸 해야 돈을 벌고 성공한다"는 말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동일한 목소리로 공포를 조장하고, 10%의 승리자 안에 들어야만 의미 있는 삶인 것처럼 몰아세운다.


그런 막막한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설령 그들이 말하는 대로 치열하게 싸워 살아남았다고 한들, 그 결과물 안에 정작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남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승리하는 법을 익히느라 정작 내 마음이 어떤 색인지, 내 영혼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잊어버린다면 그것을 과연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유일무이한 생을 '잘 살아내기 위해' 이곳에 있다. 생존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내가 나를 정확히 알고, 내 마음의 처방전을 스스로 써 내려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각박한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갖게 된다.


나를 아는 것, 인공지능이 범접할 수 없는 마지막 성역


이제 사람들은 고민조차 AI에게 맡긴다. 내가 무엇을 먹을지, 어떤 길로 갈지, 심지어 내 마음이 왜 아픈지조차 알고리즘에 묻는다. 만인의 절친은 AI가 되었다 할까. 하지만 나를 관찰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직접 읽고 쓰고 경험하며 얻은 감각과 안목은 결코 인공지능이 복제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알아야 내 삶을 주인답게 이끌 수 있다. 그 단단한 자아의 중심이 잡혀 있어야 내 아이에게도 올바른 사랑을 줄 수 있고, 주변 관계에서도 건강한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의 헌신은 결국 공허함으로 돌아오지만, 나를 아끼고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 될 수 있다는 것.


결국,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


이 모든 깨달음은 결국 '받아들임'에서 시작되었다. 길 위에서 마주한 나의 서툼, 육아의 고단함, 피아니스트로서의 고뇌, 그리고 때로는 이기적이고 싶어 하는 솔직한 욕망까지. 그 모든 조각이 '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관찰이 시작되었다.


실패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을 기르고, 나의 선택에 기꺼이 책임을 지며,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격려하는 마음. 그리고 모든 일이 익어갈 때까지 인내하며 소망을 갖고 기다리는 것. 이것은 오직 나 자신과 대화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기술이다.


<길 위에서 만난 나>라는 이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만, 나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남에게 혹은 인공지능에게 내 행복의 조건을 묻지 않는다. 내 마음의 처방전은 오직 나의 관찰과 경험, 그리고 뜨거운 기록을 통해서만 쓰일 수 있을테니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 나의 생(生)에, 나 자신이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비록 쉽지 않을지라도, 그 길 끝에서 만날 나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울 것이라 확신한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