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짜 이름
많은 닉네임으로 살았다.
누군가의 딸, 엄마, 아내, 언니, 친구, 성도, 선생님… ‘나’이기 전에 불리는 이름들.
그 이름 하나하나에 담긴 책임과 기대를 지느라 나름대로 애썼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내 고유 이름보다 더 자주 불리는 이 이름들이 모두 나이지만, 때때로 나로서 존재하는 ‘나‘로 살고 싶었다. 어쩌면 그 역할들에 충실하느라 정작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오랫동안 뒷전으로 미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하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내 마음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환경 탓인가, 성격 탓인가.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하는 게 왜 이기적인 걸까?
생각해 보면, 아무도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 그런 결론을 내려버렸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공감했고, 어떻게든 마음을 덜어주려 했다. 남에게는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정작 내게는 쉬어갈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이 안쓰러웠다. 나조차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싶다’에 머무르며 망설였다. 그깟 바다가 뭐라고.
더 이상 고민만 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원하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한 ‘표’를 끊었다.
그 여행은, 마치 나에게 내리는 셀프 처방전 같았다.
고민하지 않기.
내 마음을 우선에 두는 시간 갖기.
서두르지 않기.
애써 챙기려 하지 말고, 그저 바라보고 싶은 것만 보기.
그리고 받아들이기.
엄마 뱃속 작은 씨앗일 때, 난 오롯이 나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
열 달 후,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내 이름도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저 나로서 빛나는 이름.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은,
가장 먼저 주어진 내 이름으로 살고 싶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