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을 지나, 기차표를 샀다

할 수 있을때 하기

by 서나송

"나 부산에 갈 거야. 오늘 기차표 샀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한 적이 있었나? 나조차도 내 말이 낯설었다. 남편에게 여행을 통보한 건 처음, 더군다나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했으니, 남편이 당황할 만했다.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남쪽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했던 게 전부인데, 갑자기 기차표를 끊었다니. 그의 표정에서 놀람과 걱정이 동시에 스쳤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애들 맡길 데 없으니 데리고 갈 거야. 셋이서 다녀올게. 오빠에겐 미안해."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남편은 일하고, 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 내가 누리는 시간이 남편의 노동 위에 놓여 있는 것만 같아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으니까. 나는 그동안 이런 선택을 얼마나 미뤄왔던가.


결코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감정을 여러 번 다독이고 눌러 왔다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이었을 뿐.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어쩌면 너무 가고 싶어서, 말로 표현하는 순간 더 우울해질까 봐 망설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안에서 이미 결심이 서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기차표 여유 좌석이 뜨는 순간, 손가락은 망설임 없이 결제버튼을 눌렀다. 좌석이 다 제각각이었는데도 마음은 그렇게 후련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고민했을까. 아니, 나는 왜 늘 나를 위한 선택 앞에서 이렇게 주저할까. 결혼 전에도 그랬다. 나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우리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언제나 내 선택보다 가족과 주변을 위한 선택이 우선이었다. 돈과 형편은 늘 내 마음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돈의 가치’에 대한 나의 오래된 신념이 있었다.


내게 돈은 ‘벌어서 남 주는 것’이었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여윳돈이 생기면 모아서 더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내가 쓰는 돈은 상대방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정직하고 알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 ‘필요한 곳’에 '나'는 늘 망설임의 이유가 되었다. 내 안의 가치는 오롯이 남을 위한 것이었고, 나는 늘 나를 뒤로 미뤄왔다.


하지만 이런 삶이 계속되면 결국 어느 순간 허무함이 밀려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자신을 위한 선택을 끝없이 미루다가,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뭘 위해 살았을까’ 하는 공허함에 빠지는 사람들. 나는 그 길을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이번 여행이었다.


나 혼자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행도 아니었다. 그림자처럼 함께하는 아이들이 곁에 있으니 말이다. 육아 출장이 아닌 진짜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다. 나 혼자. 하지만 남편이 아이들을 돌봐줄 상황이 아니었고, 그조차도 내 선택의 일부였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래서 함께 떠나기로 했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는 나 자신을 최대한 배려하기로 약속하며.


남편이 27인치 캐리어를 꺼내 주었지만, 나는 다시 넣어두고 배낭을 꺼냈다. 여행의 시작부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짐은 아이들이 직접 꾸리게 했다. 내 덕분에 가는 여행이니, 최소한의 책임은 스스로 지게 하고 싶었다. 나 역시 군더더기를 덜어냈다. 여벌 옷, 화장품, 태블릿, 여러 권의 책도 필요 없었다. 읽고 쓰는 일조차 덜어내고, 오직 바다를 바라보는 데 집중하고 싶었으니까. 바다를 떠올릴 때,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배낭을 선택한 건 단순히 짐의 문제가 아닌, 이번 여행이 오직 '나 자신을 위함'이라는 선언이었던 것 같다.


'바다가 너무 보고 싶다'는 것.

고민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데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간절함'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 삶에서, 나를 위한 선택이 필요했을 뿐. 이번 여행은 그것의 시작이었다. 부산행 기차에 올라타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설레임만 남았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될지 몰랐지만, 적어도 이번 만큼은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기에.


그렇게 도착한 부산의 바다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넓고 깊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윤슬로 한껏 아름다움을 내뿜던 바다는 구름 사이로 빛이 가려지자, 조용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여전히 바다가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끝없는 자유로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바다로 존재하는 것처럼, 나도 내 자리에서 그렇게 존재할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바다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내린 이 결정이 결코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아니, 정말 잘했다고. 고민하며 머뭇거렸다면 얻지 못했을 경험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고민한다. 때로는 더 나은 시기를 기다리고, 때로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결정하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때로는 깊이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것. 모든 선택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어떤 길을 가든 그 길에서 의미를 찾으면 된다는 것. 이번 여행이 내게 건넨 첫 번째 처방전이다. 그리고 대개, 우리가 두려워했던 결과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망설이게 될 어느 날, 적어도 한 번은 주저 없이 떠나봤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며.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