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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Apr 15. 2023

하늘나라가 존재하는 이유

 자살에 대한 묘사가 있는 글입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 톤이 상당히 높았다. 나는 익숙하게 이 자식 또 술 마셨냐고 타박했지만 내심 술주정을 들어주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와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소설을 쓰는 친구였는데, 나는 술 마신 김에 소설 이야기나 해 보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부끄럽다며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았을 친구였는데 그날따라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하는 데에 관대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이야기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항상 창작물 이야기를 해 보라고 말만 했지 내가 그 창작물에 대해 궁금한 게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이야기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소주를 서너 병은 마신 모양이었다. 친구는 기분 좋은 채로 내게 술주정을 부렸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이불 속에 누워서 그 친구의 술주정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친구는 SNS에 유서를 쓰고 하늘로 먼 여행을 떠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부 기억나는데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실시간으로 유서가 올라오고 있었다. 근처에 사는 다른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의 사진과 생일, 집 주소를 찾아다니며 어떻게든 그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그를 찾아내려고 했다.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그는 죽었다. 전날까지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나와 통화하던 친구였다.


 사실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도 그는 SNS에 죽겠다고 말한 채 휴대전화를 꺼 놓은 적이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그를 찾으려고 했다. 그건 나를 괴롭게 만들기 충분했다. 주변 사람이 자살에 대한 의사를 내비쳤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기보다는 그의 감정에 마음이 동화되는 게 더 괴로웠다. 나 또한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의 자살 사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상태가 괜찮을 때 이야기했다. 그런 네 행동이 나를 괴롭게 했다고.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는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정신 상태가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믿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찾아왔다. 

 그의 죽음을 알게 된 다음 날 나는 멍하니 홍대 거리를 떠돌다가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서 집에 있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 다음 날에는 학교도 가지 않고 장례식이 있던 남쪽 지방까지 내려갔다. 각지에 사는 그의 친구들과 부산역에서 모여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에 갔다. 우리를 본 상주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지에서 그 애를 위해 와 주었다고…… 분명 친구도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 거라고.


 그 말에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맹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귀신과 같은 이상 현상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몸에서 사고하고 감각하는 건 그저 세포와 신경 같은 것들이 일으키는 반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가 자살을 시도하고 숨이 멎은 그 순간 내게 있어서 친구의 정신은 이미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친구를 화장하고 그 재를 허공에 뿌렸을 때, 그 애는 이미 세상에서 없어져 개념으로만 남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의 생각을 했다. 그는 내가 가장 많이 통화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종종 담배를 피우던 술집 앞에 발을 내디뎠을 때, 자주 통화를 했던 할머니 댁 옥상에 올라갔을 때……. 간헐적으로 그의 생각이 났다. 그의 이름 석 자가 내 휴대전화 ‘자주 사용하는 연락처’에 남아 있었다. 아직도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가 전화를 받을 것 같았다. 그가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믿으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에 간다거나 저승에 간다거나 하는 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세상에 존재하던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건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다. 영영 사라졌다고 믿으면 한꺼번에 많은 고통이 마음으로 몰려와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대신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났다고 믿으면 내가 모르는 어디에선가 그가 살아있을 것만 같아 마음에 위안이 된다. 사후세계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세계라는 이야기가 있던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가 죽고 난 뒤, 나는 그의 창작물에 관심을 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숨기던 것을 그렇게 흔쾌히 알려준다는 것이 자살 신호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책했던 것도 같다. 물론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는 다르게 마음은 자꾸 자책하는 쪽으로 기울어만 갔다. 그런데 친구가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났다고 믿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애가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분명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리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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