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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주세요, 솔직하게.

모리 작가

by 안착한여성들



(The 1975 - What Should I say)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



아니 에르노의『단순한 열정』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책의 전반적인 톤을 견인하는 문장이다.



책은 작가의 연애에 관한 솔직한 내면 묘사로 채워진다. 독서 모임에『단순한 열정』을 들고 갔던 적이 있다. 모임은 한 시간 동안 각자 자신의 책을 읽고, 그 후 한 시간 동안 읽은 부분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앞 차례의 사람이 세계 무역의 불평등한 구조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며 각종 공산품의 수입 구조를 요약했다.


다음 차례였던 나는 『단순한 열정』을 소개하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연애담인데 상대가 유부남 외국인-까지 말하다가 말을 흐렸다. 그럼 불륜인가요? 누군가 그렇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열정』을 읽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몇몇 대목을 기억한다. 어떤 대목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돋보이고, 어떤 대목은 인용조차 망설일 정도로 적나라하다.


하지만 누구나 정의 불가한 마음으로 행동한 적이 있지 않은가. 혹은 집착이나 집요한 욕망을 가져본 적 있지 않은가. 말해지지 않을 뿐이다. 책을 읽던 당시의 나도 그랬다. 그때 나는 시차 19시간의 롱디 중이었다. 상대를 직접 안기 위해 돌아가며 열두 시간의 비행을 하던 해. 그 겨울 에르노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편해졌다. 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싶어서.



비슷한 연유로 김연덕 시인을 좋아한다.




환하게


애원하는 세부 세공된 풀밭에 나 누워 있습니다

미치지 않았어요 제정신으로

이가 부러졌어요

혀가 잘렸어요

비유가 아니라 상징이

아니라 현실의 내 멍한 치아 오늘도 흉하게 나갔답니다

기이한 안식처

천국 고집대로 고수한

결기 죽지도 살지도 않는

기대 때문에요 나의

최선 때문에요.


-「그릭크로스」, 『재와 사랑의 미래 부분』




시인의 첫 번째 시집에 실린 시다. 시인은 형편없이 무너지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인용으로 이 시가 제일 먼저 떠오른 이유는 ‘이가 부러졌’다는 내용 때문이다. 시인은 일기에서 이가 부러진 날을 언급한 적 있다. 실연 후 크게 넘어지는 바람에 앞니가 깨져버렸다. 그럴 정도로 무너진 무언가와 그로 인한 자조의 마음에 대해 곱씹게 된다.



이들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일전에 소설을 쓰며 괴로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끝까지 파고들어 가 감정을 묘사해야 했고, 인물들 목소리에 자꾸 내 목소리가 섞였다. 이건 허구의 소설일까, 아니면 나의 이야기일까. 한 문학 수업에선 소설이 ‘수정된 자서전’이라는 표현을 들었다. 나는 그것을 내내 기억하고 있다.



비단 소설뿐만이 아니라 일기에도 깨끗하게 진실을 담기란 어렵다. 정말이지 창피한 일들은 털어놓더라도 조금씩 변형하고 변명하며 습관적으로 각색한다. 공개 일기라면 더 그렇다. 블로그에 쓰는 일기는 나의 실제와 다르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의 일기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친구가 털어놓은 말은 내가 읽은 일기와는 전혀 달랐다.



어렵기에 숨고 싶은 본능을 뚫고 쓰인 솔직한 글을 사랑한다. 윤리적이고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기준을 넘어 조심스럽고도 또박또박 쓰인 언어들은 아름답고 그 자체로 위안이다. 솔직한 목소리가 이 사회에 더 필요하다. 늘 제한된 정답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기 쉬우니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므로 묻고 싶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와 같은 여성은, 20대는, 1인 가구는, 저임금의 사회 초년생은, 연고 없는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은?



나는 현재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한 지 반년 차로, 연고 없는 지방의 도시에서 살고 있다. 계속 이곳에서 일할 거라는 입사 동기와 다르게 여전히 진로 고민을 한다. 그래서 삶이 안정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사실 내년도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배가 불렀다고 말할 것이다. 교대에서 문과 대학에 가고자 매년 수능을 볼 때 무수히 들었던 말이었다. 당시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목소리를 어디서도 듣지 못했고 슬픔에 내내 시달렸다.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나의 목소리를 더하고 싶다. 그래서 한 명에게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서울에서의 인턴 생활과 공공기관 신입으로의 일상을 위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솔직하게.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취준생이라면, 직업 선택 앞의 기로에 서 있다면, 다른 진로를 꿈꾸는 교사라면, 혹은 지방으로 이사 갈 예정이라면, 앞으로의 글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지하철에서, 혹은 자기 전에, 음식을 기다리며, 아주 가볍게.


내가 쓸 글들은 소설처럼 그냥 보여주기다. 이런 식으로 살아온, 살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러므로 당신의 삶 역시 그 자체로 괜찮다고, 오히려 다양함의 한 부분이라고. 이 한 가지를 말하고 싶어 쓴다. 그럼 많관부...






작가 모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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