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본가에 사는 게 아니다

유안수 작가

by 안착한여성들




애인은 나보다 세 살 어린 대학생이다. 본가는 대학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일찌감치 자취를 시작했다.



그는 아직 취향이 뚜렷하지 않다. 게다가 재수에 반수까지 입시에 몰두한 시간이 꽤 길었다. 나와 만나기 전까지는 학교와 대치동 외의 서울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별 약속 없이도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내 20대 초반과는 완전히 반대다.


서울 환승역을 줄줄 꿰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퍽 감탄한다. 내가 문화생활도 훨씬 많이 하고 여행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가 부모와 독립하여 지낸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보다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우린 서로에게 철없다고 놀리는 포인트들이 조금씩 있는데, 그가 지적하는 내 미성숙의 핵심은 ‘아직까지도’ 부모와 같이 산다는 점이다.



우리 집에는 공식적인 통금은 없다. 하지만 같이 사는 구성원으로서 자정 넘어서 들어오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어머니의 강력한 신조가 지배하고 있다. 외박을 싫어하시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어릴 때는 이것 때문에 싸우기도 했지만, 이젠 나도 밤늦게 놀 체력이 안 되고 술도 끊었기 때문에 귀가할 핑계로 잘 써먹곤 했다.



스무 살부터 자유, 그보다는 방종에 가까운 혼자의 삶을 누린 그에게 비친 내 인생은… 갑갑함 자체다. 어디서든 밤 11시쯤이면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곤 하니까.


물론 나야 ‘얹혀사니 어쩔 수 없지… (은근 좋기도 하고…)’하며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집에 가서 부모님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삶을 즐기고 있지만 그는 나의 이런 삶에 조금 불만이다.



연애 초에야 늦게까지 같이 못 있으니 아쉬움에 말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그런 류의 불꽃이 사라진 요즘에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한 번 나와서 살아봐야 해. 내 인생을 오롯이 책임지고 있다는 느낌은 되게 다르거든.’



그다지 훈계조는 아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심 찔린다.


아니, 실은 오래전부터 내가 스스로를 찌르고 있기에 그가 툭, 건드린 것에 더 아파하는 것에 가까우려나.


나도 스무 살에 한 학기 정도 기숙사에 살면서 생활비도 스스로 충당한 경험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당시에 강한 책임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한 학기는 너무 짧고, 그 학기가 지나고 바로 코로나19가 찾아왔기 때문에 그 시절이 흐릿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곳저곳에 욕심이 많은 나로서는, 연하의 사람이 이미 경험한 것을 아직 하지 못한 게 조금 분하고, 질투도 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지난 캥거루족 글까지의 주요한 테마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시기심까지 나왔다. 주거 독립을 이미 실천한 동년배에 대한!



반복되는 부정적 감정들은 독자의 피로를 유발할 것이다. 사실 작가인 나부터가, 글을 쓰다가 마음이 갑갑해졌다. 이 시리즈를 이렇게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온갖 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내 끈적하고 어두운 감정의 원인은 무엇인가!



키보드에 올린 손가락을 멈추고 좀 더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한동안 이 글을 조금 묵혀두었다.



나의 현재 상황과 그 상황에 따른 감정들을 따라가 보았다. 나는 부모님의 집에 산다. 본가에서 살고 있는 게 가족이나 친구,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애인의 불만 정도?)


돈을 아예 벌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주변 친구들도 다 나처럼 캥거루족이다. 그러니까 나만 유난히 주변과 동떨어진 삶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주거, 경제적 독립을 이룬 내 또래의 사람들’과 나를 구태여 비교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부끄러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 마음 깊이 요동치고 있는 무언가를 느꼈다.


불편하게 뭉근하고 축축한 흔들림 같은 것. 아주 오래간 맡아온 냄새가 났다.



불안.



불안, 그리고 두려움.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약간 소름이 돋았다.


왜 두려움을 느끼지? 답은 바로 나왔다.



돈이 없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했다. 현재 돈이 별로 없다.


내가 가진 돈으로 내가 서울에서 몇 개월이나 지금 본가에 사는 것과 같은 주거와 식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서울의 본가에서 현재 부모님이 제공해 주시는 주거와 식사의 기회가 없다면 내 생존은 상당히 위태로워질 수 있다.


만일 부모님이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아름다운 남도의 고향으로 돌아가시거나, 갑자기 자식에 대한 마음이 바뀌어 ‘이제는 지원하는 거 없다. 각자 살아라.’라고 말하게 된다면….



이러한 상상에 다다랐을 때, 안락한 본가에서 지냈기에 보다 편하게 외면할 수 있었던 진정한 객관화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난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당신은 이미 충분해요’ 같은 말은 접어두고, 사회적 관점에서 나를 보면 가진 게 정말 없다. 부모님 빼고는.


또래와의 비교를 통한 피상적인 부끄러움은 핵심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가진 게 없는지 인식하고 이런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깨닫는 것이었다.



캥거루족에게 본가에 사는 건 극히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한 명의 성인으로서 온전히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주체가 아니라는 점. 이 집에서 나가서 온전히 생존할 자신이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이었다.




작가 유안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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