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태어났다.⟫, 조르주 페렉, 레모, 2021

by 이유해

“나는 글쓰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작가가 여기 있다. 자전적 요소와 제약을 주요 토대로 삼고 작품 활동을 한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이다. 작가 사망 후 원고와 기록을 모아 여러 편의 책이 출간되었으며, ⟪나는 태어났다.⟫도 그중 한 권이다. 이 책은 조르주 페렉의 편지, 연설, 인터뷰, 메모 등을 모아 그의 여러 작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한다.


어린 시절 조르주 페렉은 전쟁으로 폴란드계 유대인인 부모님을 잃고 프랑스의 고모 집에서 자랐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자전적이고 유희적 글쓰기로 삶에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인 ⟨나는 태어났다.⟩는 ⟪W 또는 유년의 기억⟫를 쓰기 위해 작성한 노트 중 하나이며, ⟨가출의 장소들⟩은 조르주 페렉이 어릴 때 가출한 경험을 제삼자의 눈으로 기록한 글이다. 또 ⟨모리스 나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가 구상 중인 소설과 프로젝트에 대해 문학잡지 ⟪라캥젠트 리테레르 La Quinzaine littéraire⟫ 편집자이자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모리스 나도에게 상세히 설명한다. 이 편지에서 제약을 통한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준 ⟪실종⟫, 자전적 글쓰기의 ⟪W 혹은 유년의 기억⟫, ⟪인생 사용법⟫의 토대가 된 12년 장기 프로젝트 ⟪장소들⟫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프랑크 브나이유와의 대담 ⟨기억의 작업⟩에서는 개인의 기억에서 공동의 기억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작업을 찾을 수 있다.


⟨'엘리스섬' 프로젝트 설명⟩에서 조르주 페렉은 자기 이름의 프랑스식과 폴란드식 표기와 발음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렇게 말한다.


“미미하지만 집요하고, 은밀하며,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은 이런 식의 사소한 불일치에 집착한다. 내 안의 무엇인가와 관련해 어딘가 낯설다는 감정, 그것은 ‘다르다’는 감정인데,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보다 ‘나의 가족’과 훨씬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나는 내 부모가 말했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나는 부모님이 갖고 있었을 어떤 추억도 공유할 수 없다. 역사, 신앙, 희망처럼 당신들 안에 있었던 무언가, 그리고 당신들을 만들어 주었을 무언가가 내게 전달되지 않았다.”(117~118쪽)


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한 후 허무하게 죽고, 어머니는 조르주 페렉만 적십자 호송 열차에 태워 스위스로 보내고 자신은 파리에 남는다. 그 후 어머니는 수용소에 수감되어 사망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망시점을 알 수 없어 어린 조르주 페렉은 슬퍼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조르주 페렉의 유년 시절은 빈자리로 남아 있다. 부모님과의 단절과 기억의 공백, 공간의 부재는 그에게 끊임없이 기억의 작업을 하게 했다.

“나에겐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 (⟪W 혹은 유년의 기억⟫, 펭귄클래식, 2011)라고 말하는 그는 사진과 고모와의 인터뷰, 어린 시절 지냈던 장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듬으며 자전적 글쓰기를 통해 계속해서 흔적과 기록을 남기려 한다.


조르주 페렉의 연설문, 편지, 신문기사 등 성격이 다양한 이 책 속의 글들은 독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할 것인지 묻는다. 페렉은 낮에는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밤엔 글을 썼다. 그는 인생의 공백을 끊임없는 글쓰기로 채우려 했고, 마침내 그 공백을 놀이터로 바꾼다.

몸소 글쓰기의 새로운 전략과 포부를 보여준 조르주 페렉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속해서 물으며, 독자에게도 흔적을 남기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권한다.


이 책 속에는 페렉의 기억과 시선 그리고 쓰기의 흔적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페렉의 작품을 아직 접하지 않았다면, 이 책 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혹시 다른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이 책으로 다시 출발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