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큰소리들

⟪정어리의 웅변⟫, 빌 프랑수아, 레모, 2022

by 이유해

*물살이 - 살아있는 소, 돼지 등은 쇠고기, 돼지고기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다, 해양생물에는 물‘고기’, 해산물(바다에서 생산되는 물건)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붙습니다. 함께 존중받아야 하는 지구 생태계 일원으로 종평등을 위해 ‘물살이’라는 표현 하였습니다.



나는 물살이*를 무서워한다. 물살이의 무심한 까맣고 큰 눈, 입 크기에 상관없이 자글자글한 이빨을 보면 원초적인 공포가 올라온다. 아니, 물살이뿐만이 아니고 두족류, 갑각류, 심해의 해양 생물까지도 말이다. 그런데도 함께 지구에 사는 이웃이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어리의 웅변⟫이라니, 제목부터 눈길이 간다. “정어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무슨 말을 하길래?” 호기심이 생긴다. ⟪정어리의 웅변⟫은 얕은 물가에서 깊은 심해까지, 정어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닷속 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들의 삶을 통해, 해양 생물들에 비춘 인간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바다의 이웃들을 소개해주기 전에 작가는 이들의 소통 방법을 알려준다. 인간은 물속에서 코를 막지만 해양생물들은 파도에 실려오는 향을 맡을 수 있다.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피부색과 패턴을 이용하기도 하고, 몸통 옆줄의 유모세포로 해류와 진동의 신호를 읽는다. 이 탁월한 감각으로 정어리는 우두머리 없이도 질서 있게 이동하고 연어는 강에서 흘러온 몇 방울 냄새 분자로 고향을 찾아간다. 소리는 어떤가? 해령이 움직이는 묵직한 소리, 부레를 부풀리는 소리, 전갱이의 이빨 가는 소리의 합주까지 − 바다는 그야말로 "침묵없는 세계"이다. 해양 생물들의 감각적인 소통방법을 알려준 후, 작가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들을 만나보자고 독자의 손을 이끈다.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65리터의 물을 여과하는 홍합, 새끼를 품은 채 2년 이상 배 속에 넣고 다니는 돔발상어, 인간과 고래사냥을 함께 하는 범고래 올드 톰과 전설의 긴 바다뱀과 닮은 11미터의 산갈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항공우주국 NASA 망원경과 형광 단백질로 생화학 분야에 각각 영감을 준 새우와 에쿼리아 빅토리아 해파리도 있다. 레스토랑 추천 요리로 만나는 볼락과 대구, 무분별한 남획으로 개체수가 줄어든 키조개 그리고 모조 진주의 핵심 재료를 위해 비늘을 뜯긴 2만 마리의 잉어의 서글픈 사연까지, 다양한 생물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을 보며, 우리는 바다 이웃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서로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기록을 살펴보면, 옛 호주 원주민들과 사냥을 했던 빨판 상어와 마을 주민들이 “시몽!”하고 외치면 나타났던 지중해 돌고래의 이야기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며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임라구엔족과 호주 원주민, 티푸타의 잠수부들은 바다 생물과 대화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바다 동물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 동물들을 조련하지 않는다. 단어들 너머에 있는 것을 동물들과 함께 나누려고 애쓴다. 사람들 자신이 바다 생물이 사는 세계의 일부가 되려고 노력한다. 저마다 상대의 소리를 해석하지만 무슨 뜻인지 완전히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의도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다."(221쪽)


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해양 생물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언어’라는 틀에 사로잡혀 해양 생물들은 인간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고 단정짓고 이들이 건네는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건 아닐까? 소리와 색, 움직임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함께 살아가는 해양 생물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속에서 인간은 정말 대화를 하고 있는지,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묻게 된다.


길을 가다 멋진 집을 보면 ‘저기에는 누가 살까? 안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바다라는 집의 겉모습에만 관심을 두고, 그 안에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산뜻한 파란 글씨와 작가의 손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라는 집을 풍덩 빠져 수많은 바다 이웃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유머 있고 따듯한, 때로는 냉철한 우리 사회에 대한 통찰은 해양 생물과의 진심 어린 공존과 이해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인간 역시 지구 생태계의 일부이며 다른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물살이’ 하면 고등어, 방어 등 식재료가 먼저 생각나는 사람, ‘참치’와의 첫 만남이 참치캔이었던 사람이라면 − 그들의 참모습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