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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Jan 08. 2021

고양이는 축복이 아니다

프롤로그

세상에 고양이만큼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또 있을까? 내 눈에 씐 고양이 사랑 필터를 벗기고 봐도, 고양이는 객관적으로 사랑스러운 존재다.

톡 튀어나온 귀여운 뽕주댕이, 기분이 좋을 때면 아몬드 모양이 되는 눈,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수염, 까끌까끌한 혀, 몽글몽글한 뱃살, 말랑말랑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젤리...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외모를 여기서 찬양하자면 끝이 없다. 게다가 고양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눈 속에는 우주가 있다. 햇빛을 받으면 그 우주는 더욱 깊고 투명해진다. 투명하다와 깊다-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고양이의 눈은 그렇다.


하지만 내가 단지 고양이를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얼빠’는 아니다. (물론 80퍼센트 정도는 얼빠긴 하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 때문에 매력을 느낀다. 인간인 니가 무얼 하든 나는 내 할 일을 한다는 무심한 태도. 애가 닳을 때쯤 가끔 배를 뒤집어 보여주는 애교. 하지만 만지지는 말라는 단호함. 아무튼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 요컨대, 나는 제멋대로인 고양이가 좋은 것이다. 고양이는 내 맘대로 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고양이를 20대 초반 즈음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어느 날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것은 마치 덕통사고처럼 찾아왔다. 나는 고양이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동물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한 반려동물을 들이려면 반드시 세대주(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했다. 나는 이를 갈고 칼을 갈....지까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바로 내가 세대주가 되는 날.


그날은 갑자기 찾아왔다. 다니던 회사가 파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나 역시 서울에서 출퇴근이 힘들게 된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어버버 독립을 했고, 또 어버버 1년을 살았고, 그 1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고양이를 떠올렸다. 친구들이 남자 친구를 사귀고, 그들의 남자 친구가 몇 번 바뀌는 동안 내 관심사는 오로지 고양이였다. 친구들이 ‘연애하고 싶어’라고 생각할 때 나는 ‘고양이를 반려하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멋대로인 내 옆에 있어줄 생명체는, 똑같이 제멋대로인 고양이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제멋대로인 우리가 함께라면 제멋대로 재밌는 인생-묘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양이는 나에게 축복이자 희망 같은 거였다.


나는 유기묘나 구조된 길고양이 위주로 입양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양이 입양 절차는 까다로웠다. 혼자 사는 미혼 여성에게는 고양이를 입양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 살면 고양이가 혼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미혼이면 결혼, 임신, 육아 때문에 파양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안정적인 3인 또는 4인 가족을 원했다. 나는 정상가족이란 무엇인가 통탄하며, 이 사회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파탄 내겠다며 부르짖었다. 하지만 입양의 허들은 높았다.


어찌어찌, 보호단체의 심금을 울리는 입양신청서를 써서 간신히 임시보호처에서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고양이를 키울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입양하고픈 아이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얀 털에 파란 눈을 한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들이 뒤엉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방 안에는 흰 털이 폴폴 날렸다. 나는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인터뷰를 나누었다. 그리고 참담한 마음으로 그 집에서 나왔다.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얼굴 위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긁었더니 피부가 빨갛게 일어나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이 부어갔다.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에 파묻고 긁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침내 눈까지 따끔거리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엉엉 울었다.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고양이는 내게 축복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내게 저주였다.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단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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