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백 개의 전시를 보며 버텼던 시간들을 보내며 남기는 회고
그동안은 정말 전시를 안 보면 일주일을 버틸 수 없었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나에게 도피처이자 진통제였다. 힘든 한 주를 보내고 나면 폭식하듯 주말마다 전시를 보러 갔다.
해마다 몇 개의 전시를 봤는지 세어보고 나름의 순위를 매겼다. 뭔가 허겁지겁 내 안에 전시를 쑤셔 넣던 시간들에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해보려고 했다. 그게 벌써 4년째다. 있어 보이는 척하기에도 참 좋았다는 사실도 뒤늦게서야 인정해 본다.
24년엔 사실상 하루 걸러 하나의 전시를 본 셈이었다. 일상이라기엔 집착에 가까웠다.
22년 135개, 23년 174개, 24년 268개, 그리고 25년에는 157개의 전시를 봤다. 23년 회고 때 전시에 대한 집착 이면에 원인 모를 공허함이 문제인 것 같다고 적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시를 보지 않았다'는 게 처음으로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전시는 이제 진통제가 아니라, 비타민이 되었다.
1. 국립중앙박물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클림트를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삶과 화려한 작품을 보면 19세기말 오스트리아 제국의 쇠퇴기에 마지막 불꽃처럼 느껴진다.
클림트가 이끌던 빈 분리파를 주제로 하는 전시라니 안 볼 수가 없었다.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예술로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고자 했던 그들의 신념과 노력들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그런데 클림트에 혹해서 갔지만 마음을 뺏겼던 것은 에곤 실레였다. 분리파 전시 포스터엔 스승의 자리에 자기를 앉히는 당돌함이 보였지만, 자화상에선 불안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눈빛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높은 이상을 꿈꾸면서 현실을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고 싶었던 것 같다.
2. 푸본 뮤지엄 <루이즈 부르주아 : 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호암 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 덧없고 영원한>
작년 봄에 대만 여행을 갔다가 푸본 뮤지엄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기획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을에 호암 미술관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를 한다고 할 때 뭔가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마망'이라는 커다란 거미 조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작품의 재료와 형태, 감정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고 깊었다.
기괴하고 낯선 이미지들이 반복됐지만, 그 안엔 그녀가 겪은 트라우마와 욕망이 있었다. 치열하게 그것들을 꺼내보고 또 꿰매는 사람. 작품을 본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서 이런 질문이 맴돌았다. '나는 이렇게까지 나 자신과 마주해 본 적이 있었던가?'
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김창열>
단색화를 좋아하다 보니 김창열 작품은 자주 봤다. 그래서 솔직히 ’더 새로울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번 김창열 회고전은 내가 작품은 좀 봤어도 작가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 사람의 작가를 이해한다는 일이 얼마나 깊이 있는 작업인지를 알게 되었다.
물방울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이 어떻게 발전해 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불안과 의심들을 어떻게 확신으로 만들어냈는지, 이번 전시는 그 여정으로 사려 깊게 초대해 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물방울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을 영롱하게 비추는 창 같았다.
4. 타데우스 로팍 서울, 화이트 큐브 <안토니 곰리 : 불가분적 관계>
타데우스 로팍과 화이트큐브에서의 안토니 곰리 전시가 너무 좋았어서, 뮤지엄 산의 전시를 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신체를 추상화한 조각이 텅 빈 공간에 놓여있고, 그 안에 내가 함께 서 있었다. 이 작품을 왜 하필 여기에 두었을까? 추측해 보게 되고, 내가 이 공간과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보며 웅크리거나 앉아있거나 어딜 보고 있는 여러 모습들을 떠올렸다. 내가 그 곁에 함께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어쩌면 나를 닮은 무언가와 조용히 연결된 기분이었다.
강철이라는 차가운 재료로 사람의 몸을 표현했는데, 그게 왜 이렇게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졌을까.
5. 아라리오갤러리 <이진주 : 불연속연속>
작년 아트위크 때, 삼청동, 청담동, 한남동을 모두 돌았지만 그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전시는 이진주 작가의 <불연속연속>이었다. 삼청나잇 때 퇴근하고 부랴부랴 달려가 늦은 저녁,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마주한 그림들.
가까이 들여다보면 일상적인 장면 같기도 한데, 전체적으로는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생경한 분위기. 캔버스의 형태부터 레이어 구성까지 감각을 깨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복잡할 법한 이미지들이 이상하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묘하게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한 작품 안에 여러 겹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현실을 보고 싶냐고 묻는 시선을 느꼈다.
작년에 봤던 전시들을 돌이켜보니 예술이 내게 해준 것이 많았다.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고, 위안과 감동으로 삶을 버틸 힘을 주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예술은 내가 더 나아갈 수 있는 단서들을 여러 형태로 조용히 던져주고 있었던 것 같다.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그걸 표현해 내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걸 조용히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작년 겨울, 내 안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봤다. 그제야 알았다. 삶이 달라지려면 결국, 나를 마주해야 한다는 걸.
여전히 전시를 보러 다니겠지만, 예전처럼 집착하듯 보진 않을 것 같다. 매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고 숫자만 늘던 때와 달리 올해는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레 줄고 있다.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변화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스며들듯 일어나는구나.
올해는 이런 변화들을 더 많이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