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조금씩 시간을 내보자
에디터로서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일하다 보면 맞춤법 검사기에 의존해야 하는 순간이 종종 온다. 맞춤법을 웬만큼 공부했어도 그렇다.
만약 스타트업 에디터로 일한다면 의존도를 좀 더 높여도 좋다고 본다. "뭔 소리야, 에디터가 맞춤법 알아야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이런 이유가 크다. 맞춤법을 일일이 검사할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사업화하기 위해 탄생한 조직이다. 솔루션을 찾아내 사업 모델로 만들어 시장에 자리잡아야 하고, 좋은 모델을 찾아내려면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하며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문제는 스타트업에는 '런웨이'가 있다는 것이다. 투자받은 돈은 무한하지 않고, 고객의 지갑을 열 만한 사업모델을 찾더라도 당장 흑자로 돌아서기는 어렵다.
특히 인건비가 문제다. 스타트업의 런웨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스타트업이 10억 원을 투자받았는데, 매달 팀원들 월급으로 5000만 원이 나간다면? 순수하게 인건비만 쓴다고 했을 때 20개월 만에 회사를 발전시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 내 인건비를 아끼면서 효율적으로 제품(콘텐츠)을 개발하고 솔루션을 검증하려면? 디테일은 어느 정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면 충분하다. 당장 검증해야 하는 가설과 솔루션에 집중할 수준으로 콘텐츠가 완성되면 바로 내보내자.
말 그대로다. 맞춤법이 맞을지 틀릴지 신경 쓸 시간을 가장 아끼는 방법이다. 맞춤법을 잘 알면 쓸 때부터 나중에 수정할 부분이 거의 없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분량이 많은 콘텐츠를 제작할 때 효율이 더 커지기도 한다. 만약 1만 자짜리 콘텐츠를 쓰는데 맞춤법이 엉망이라고 해보자. A4용지로 6쪽 정도일 텐데, 맞춤법 검사기에서 확인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분량이다.
왼쪽 화면에는 교정한 부분, 오른쪽 화면에는 수정 이유를 알려주는 텍스트들. 맞춤법상 틀린 부분이 많을수록 내 원고와 대조하며 교정할 것도 늘어나고, 그만큼 비효율이 생긴다. 그 시간에 다른 업무를 하나라도 더 처리하는 것이 훨씬 낫다.
종종 맞춤법을 100% 지켰다면 '고칠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표시가 뜨는데 그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권해보고 싶다.
단순히 생각해보자.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에디터 철수와 영희가 있다. 둘 다 고객의 문제를 파악하고 빠른 속도로 검증해나가는 역량이 비슷하다. 하지만 영희는 맞춤법을 잘 알고, 철수는 잘 모른다. 이때 누가 에디터 시장에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는가?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발생하는 맞춤법 실수를 빠르게 잡아내고, 동료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피드백한다면 당연히 더 신뢰를 얻을 것이다. 동료가 궁금한 부분이 생겼을 때 언제든 질문을 할 수 있는 동료로 포지셔닝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에디터가 맞춤법 역량을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도 안다. 에디터가 되는 데 꼭 필요한 소양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맞춤법은 좀 모르지만 기획력과 실행력이 좋다면 에디터로 먹고사는 데 크게 문제될 일은 하나도 없기도 하고.
하지만 공부해보니 맞춤법은 한번 알아두면 정말 좋더라. 쉽게 까먹지 않으므로, 에디터로서 커리어를 쌓는 동안 꾸준히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거나 일하지 않아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