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보다 완성주의를 권하며
스타트업에 처음 발을 들인 에디터들은 입사 3개월 동안은 풀 죽은 채 지낸다. 나도 뉴닉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랬다.
당시 나는 출판과 매거진 에디터 업무를 두루 경험하고 입사했다. 면접에서도 “쓰는 게 자신있나요, 편집하는 게 자신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둘 다 자신있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하지만 웬걸, 입사하고 나서는 콘텐츠 톤앤매너에 적응하느라 아주 진땀을 뺐다. 늦게까지 붙들고 있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찌어찌 초안을 완성하고 퇴근해도 다음날 뉴스레터 완성본을 보면 ‘이게 뉴닉 뉴스레터 맛이지’ 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고, 언제쯤 내가 내 손으로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놓나 전전긍긍했다.
결국 3개월을 다 채워간 시점에야 완성도 있게 써낸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했고 이를 위해 회사에 고군분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 노하우는 후일에 신규 에디터의 온보딩 교육 자료의 좋은 씨앗이 됐지만, 생각해보면 효율적이지는 않았다고 판단한다. 콘텐츠를 쓸 때마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금인 스타트업 환경에서, 배부른 짓을 한 것이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접근할 것 같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며 풀죽은 상태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물론 아예 풀죽지 않는 법은 없다. 하지만 조금씩 콘텐츠에 적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입사 초반엔 콘텐츠가 마음처럼 써지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성도 잡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마감 날짜가 다가온다. 어떻게든 쓰더라도 ‘똥글’인 상태로 공유하게 될 것만 같다. 똥글을 공유하면 팀원들이 내게 실망하겠지, 나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겠지 하며 원고를 계속 끌어안고 수정을 반복한다. 그러다 스스로 ‘이 정도면 똥은 아닌 것 같아’ 싶을 때, 마감 직전에 공유한다.
이러면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콘텐츠 제작 기간을 꽉 채운 뒤에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추가로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큰 수정이 발생하거나, 아예 기획을 트는 쪽으로 결정되면 더 낭패다. 콘텐츠 제작 기간을 써놓고 다시 시간을 더 들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콘텐츠를 2개는 만들 수 있는 시간에 1개밖에 못 만들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팀원들이 놀란다. 마감 직전이 되어서 원고에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하면 팀원들은 해당 업무를 높은 우선순위로 처리하기 마련이다. 피드백을 받고 수정할 시간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고를 뒤집는 정도가 클수록 피드백에 드는 리소스를 더 많이 잡아먹고, 팀원들이 인볼브하는 정도도 커진다. 팀원들의 피로도가 커짐은 물론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진행 중간중간 빠르게 공유하는 것이 좋다. 글이 어떻게 완성될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다. 예를 들면 3~4줄 정도로 된 기획안을 공유하는 식이다. 기획의도와 타깃 독자, 컨셉, 키메시지 등만 확실히 적더라도 누구든 코멘트를 해줄 수 있다. 부족한 부분은 바로 피드백을 받아 보완할 수 있고 생각지 못한 부분을 챙길 수도 있어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 많이 해소된다. 물론 팀원들이 자신의 업무 속도에 맞춰 꼼꼼하게 피드백을 줄 수 있기도 하다.
글을 본격적으로 쓸 때도 마찬가지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중간 정도만 썼더라도 코멘트를 받은 뒤 빠르게 문제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것이 좋다. 혼자 붙잡고 있어도 풀리지 않는다면 문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재빨리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러면 다른 팀원에게 추진력 있게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이미지로 기억된다. 혼자 싸매고 있다가 뒤늦게 수습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낫겠는가, 마감 시한 내에 결과물을 여러 번 디벨롭하며 제때 완성본을 공유하는 사람이 낫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일하는 중간 과정을 동료들에게 투명하게 공유해 진행 상황을 팀원이 함께 파악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생긴다.
이런 식의 프로세스를 스타트업에서는 ‘린’하고 ‘애자일’하게 일한다고 말한다. 린과 애자일 방법론에 대한 많은 책이 두툼한 분량으로 나와 있지만, 그닥 어려운 게 아니다. 엉성하더라도 핵심 기능이 포함된 제품을 반복 공유하며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 여기서 제품을 콘텐츠로 바꿔 읽으면 된다. 꼭 위에서 말한 프로세스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주 피드백받으며 수정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 된다.
결과물이 마음대로 나올 때까지 붙잡고 있는 마음의 근간에는 ‘완벽주의’가 있다. 완벽주의를 들여다보면 타인의 평가에 대한 불안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 콘텐츠 잘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높이려다가,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가능성을 더 높인다.
스타트업에서는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인 게 더 좋다. 콘텐츠 퀄리티는 100%, 120%가 아니어도 된다. 70~80% 완성도로 꾸준히 발행하며 독자의 반응과 데이터 성과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 팀원의 리소스와 나의 리소스를 생각하며 효율적으로 성장을 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제한된 런웨이에서 제품과 서비스에 알맞은 콘텐츠 핏을 찾고 생존할 수 있다.
완벽주의보다 완성주의 혹은 완료주의 마인드셋이 필요하다. ‘완벽’하게 콘텐츠 하나하나를 세공하듯 만들기보다는 하나하나 완성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다. 피드백을 자주 받는 만큼 벌거벗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많겠지만, 미래에 누가 어떤 코멘트를 줬는지 기억이나 하겠는가. 결과물만이 적금처럼 쌓일 뿐이다.
온보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동료에게 콘텐츠 초안을 보이기 부끄럽다면 딱 한번만 눈 질끈 감고 중간중간 공유해보자. 흔쾌히 도움을 주는 팀원들의 얼굴이 눈에 보일 것이다. 그뒤로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글을 함께 읽고 고민해줄 사람이 있다는 건 글 쓰는 사람에게 귀한 일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