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친절, 오늘의 짜증

변덕이 아닌 '결'이다

by 아무것도아닌
20251106.jpg



어제의 친절함도 오늘의 짜증도, 그때의 나일 뿐이다. 변덕이라 부르든, 모순이라 부르든 그 안에서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의 결 속에서 지금의 내가 살고 있다.




'조각상'이라 착각하는 나


종종 ‘나’를 완성된 조각상으로 여긴다. 흠 하나 없는 형태로, 늘 같은 온도로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제 친절했다면 오늘도 그래야 하고, 어제 침착함을 오늘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그러다 짜증이 불쑥 튀어나오면 조각상에 금이 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 틈을 부끄러워하며 서둘러 메우려 한다. 어떻게든 '일관된 나'라는 환상을 지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솔직한 반응을 억누르고 '틀린 그림'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그 틈을 부정하고 서둘러 메우려는 그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그 흠집이야말로,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있다는, 살아 있다는 증거다.




'흐르는 강물'로서의 나


‘나’는 단단한 돌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이다. 어제의 친절은 잔잔한 여울을 지날 때의 투명한 모습이었고, 오늘의 짜증은 거친 바위에 부딪히며 일렁이는 물결의 반응이다. 강물은 매 순간 다른 풍경을 만나며, 그에 따라 다른 결을 만들어낸다. 잔잔함도, 소용돌이도 모두 강물의 일부이듯, 친절함과 짜증 역시 '나'라는 강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것은 모순이 아니라, 생명의 리듬이다. 강물이 자신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듯, 나 역시 나의 결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심판 대신 관찰을


필요한 건 “왜 나는 완벽하지 못한가”라는 자책이 아니다. 오늘의 결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이다. “이 짜증은 어떤 바위를 만난 강물의 결이구나.” 그렇게 자신의 상태를 '심판'이 아닌 '관찰'의 대상으로 삼을 때,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친절한 나도 짜증 내는 나도 모두 '나'라는 하나의 강물로 수렴된다. 변덕이 아니라 결, 흠집이 아니라 무늬. 삶은 단단한 조각상이 아니라, 흐르며 끊임없이 자신을 새기는 강물이다.




이전 04화불안이 찾아올 때, 나를 지키는 법 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