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약한 고백이 주는 위로
지금의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이 흘러갈 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온 이른바 '인간' 세계에서 단 하나 진실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것 뿐이었다. _ <인간실격> 중에서
이제야 결이 맞는 걸까. 예전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서 묘한 저항감을 느꼈다. 감당하기 벅찬 상실과 회의, 끊임없는 자책이 마치 패배자의 넋두리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삶의 고단함을 알게 된 지금, 그의 글은 더 이상 불편한 이물감이 아니라 내 속마음을 들킨 듯한 편안함으로 안착한다. 그의 문장들은 나락으로 등을 떠미는 게 아니라, 인간이 한낱 껍데기일 뿐임을 자각하고 그 무의미해 보이는 삶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직면하려는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한 발짝 나아가려는 의지였다.
신간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은 그 몸부림의 궤적을 섬세하게 복원한다. <인간 실격>, <사양> 등 대표작에서 선별한 문장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다자이의 날카로운 문장 곁에 자신의 사유를 덧대어, 그의 내면 깊은 곳으로 조용히 이끈다. '부서진 마음'에서 시작해 '아름다운 것'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아픔을 마주하는 과정을 지나, 결국 인간다운 가치인 신뢰와 사랑을 회복해가는 치유의 여정을 보여준다.
사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이곳저곳에서 사슬이 얽혀 있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피가 터져 나온다. _ <앵두> 중에서
누구나 삶은 고단하다.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지만, 때로는 남과의 비교에서 패배하고 열등감과 고립 속에 방황한다. 다자이 문학의 힘은 이 지점에 있다. 그는 "나약한 자의 삶은 누가 위로할 것인가"라고 묻으며 자신의 나약함과 위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역설적이게도 그 솔직함은 읽는 이에게 묘한 해방감을 준다. 아픔을 덮고 괜찮은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정확히 응시할 때 인간은 여전히 남아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를 두고 "자기 파괴를 통해 끝내 인간을 긍정한 작가"라고 했다. 그의 문장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천천히 되새기다 보면 그 평가의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기어이 '살고자' 했던 한 인간의 삶을 붙들려는 의지가 활자 너머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날, 섣부른 긍정의 말보다 다자이의 서늘한 문장 하나가 더 깊은 위안이 된다. 어두운 밤일수록 작은 불빛은 선명하다. 흔들리는 일상을 지탱하는 건, 바로 그 고요하고도 확실한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