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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Apr 22. 2017

더플랜, 김어준의 빅픽쳐

중요한 건 K값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동안 김총수에게 돈을 떼인 거겠거니 생각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나름 농담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바닷속으로 침몰한 그 해 겨울, 김총수가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을 한다기에, ‘아무도 안 하는데 그럼 어디 당신들이 한번 해보쇼’라는 심정으로 후원을 했고, 생각보다 제작 타임라인 업데이트가 잘 안됐지만 ‘어련히 잘 만들고 있겠지’ 싶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도 내가 후원을 한 사실을 잊게 되었고 다시 2년이 되던 어느 날, 같이 후원했던 친구가 묻더라 '야, 근데 미친 김 감독은 이거 만드는 거야 마는 거야.'




‘아참, 내가 거 뭐 좀 만들어보라고 후원을 했었는데 이거 이거 영락없이 떼먹었구나. 얼마 안 되는 월급이나마 받아보려고 아등바등 사는 나 같은 소시민에게... 나쁜 사람 나쁜 사람. 흑흑.’ 하지만 ‘프로젝트不’ 측에 추가 문의를 하거나 진상을 떨지 않은 건, 나는 그에게 말로는 설명하기가 참 힘든 일종의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지금에야, 그가 ‘어둠의 음모론’의 무시무시한 우두머리가 되어 거의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 급의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내가 그를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이 세상에 뻔하지 않은 인간도 있다는 것, 뻔하지 않은 인생도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쫄지마 시바 외치는 졸라 희한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던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도 졸지에 어둠의 자식이 되었다.




여하튼 그런고로, ‘프로젝트 不’의 존재 자체를 잊고 살던 얼마 전 정말 뜬금없는 메일이 도착했다. 후원자 분들에게 먼저 선보인단다. ‘더플랜’이라는 부정개표 의혹 다큐멘터리 영화를. 오호라 비정상적인 나라 꼴로 인해 영화 공개도 비정상적으로 급물살을 타는구나 싶었고, 2년 몇 개월 전의 그 후원금은 영화를 꽁짜로 보기 위해 건넨 마음이 아니었기에 반드시 유료로 관람해주겠다 마음을 먹었다.









중요한 건 K가 아니다. 그렇다고 P의 숫자도 아니고, M의 숫자는 더더욱 아니다.

‘더플랜’은 극영화가 아니고, 최근 9년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회고발 영화다. 영화를 비교적 세련되게 뽑아낸 최진성 감독과 총괄 제작을 맡은 김어준 총수는, 18대 대선 당시의 개표상황에 대한 꽤 합리적인 3가지 의심에서부터 영화를 시작한다.



우선 ‘시간 역전’이다. 개표의 타임라인은 절대적으로, 앞 순서를 역전할 수 없음(개표->수검표->공표)에도 불구하고, 개표소에서 최종 공표를 하기 이전에 각 방송국에서 당선 유력이라는 결과를 보도했다는 것. 매우 걸쩍지근하고 의심스럽지만 각 방송사별로 보도 기준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예를 들어, 개표 50% 이상 진행 시 특정 후보 득표 수 % 기준 등) 뭐 그럴 수 있다 치자.



자, 그럼 두 번째는 ‘역 누적’. 시간 순으로 누적 표차를 산정할 경우 1번 후보는 단 한 번도 2번 후보에게 진 적이 없다. 그런데, 이를 가장 마지막 개표부터 역으로 누적하여 계산할 경우 특정 시점 (ex. 밤 12시부터 개표 종료까지)부터는 2번 후보가 계속 이긴다. 즉, 2번 후보의 표가 더 많은 투표함이 늦게 열렸다는 거다. 흠. 뭐 이것도 졸라 미심쩍지만 비교적 개표가 빠른 시골 지역에서 1번 후보의 지지율이 높았음을 감안하면, 도시 지역 개표함이 늦게 열렸을 경우 뭐 그랬을 수도 있다 싶다.



문제는 3번이다. 미분류표의 비율과 숫자. 영화에 나온 팩트만 나열해 보자면,

1) 우선 평균 대비 개표 기계에서 미분류로 분류한 표의 비율이 너무 높다. (보통 1% 미만 -> 18대 대선 3.6%)

2) 미분류표에서 재검표하여 유효표로 분류된 표의 숫자가 251개의 전국 모든 투표소 공히 1번 후보가 많이 나왔다.

3) 전 지역 미 분류표 중 유효표로 나온 표의 숫자를 통계적으로 계산한 결과, K값이라는 함수로 도출했을 경우 정상이어야 할 값인 ‘1’ 대비, 비정상적으로 높은 ‘1.5’라는 숫자가 나왔다는 것.

4) 모든 개표소의 숫자가 ‘k=1.5’를 기준으로 정규분포를 그린다는 것.

5) 통계학적으로 자연발생적인 숫자 및 그래프로 보기는 어려우며, ‘디자인’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다.



영화를 봐도 언뜻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고, 태생부터 문과에다 수학과 과학은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 평생 의문을 품어온 나 같은 무식자가 봐도, 뭔가 이상하긴 했다. (사실 이 영화와 나의 글에서 이 k값이 중요한 건 아니기에 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솔직히 할래야 할 수도 없음...)



그래서 처음 영화를 보고 나오면, 머리 속엔 온통 K값이라는 함수만 둥둥 떠다닌다. 정상 K값이 1.0에 수렴해야 하는데, 1.5라니! 이건 뭔가 있는 거야! 내 이럴 줄 알았지! 중얼중얼. 즉, 누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일단 'K값'이라는 논문까지 나온 함수 자체에 시각이 매몰될 수밖에 없다. 이건 더플랜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동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왜냐면 사람이란 본디 내가 몰랐던 사실, 새로운 이론과 현상, 논란이 되는 부분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일 터. 그래서 '더플랜 반박'으로 검색할 경우 거의 대부분 1) K값과 2) 부정개표 사실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말이다. 영화를 관람하고 만 이틀을 가만히 생각을 정리한 결과 김총수와 최감독이 진짜 말하고자 한 것은 K값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든다. 정말 중요한 건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개표 조작 모의실험 결과에서 볼 수 있듯, [실제로 선관위에서 사용하는 개표기(심지어 업그레이드 버전)의 해킹이 가능하고, 개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는 정확하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게 '정확하게 조작이 가능하다'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명제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반박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런 반박과 태클들이 넘쳐날 걸 알면서도 (물론 지난 4년 동안 수많은 가설에 대한 검증은 마쳤고, 이 과정은 굳이 영화에 싣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작된 K값'에 대한 확신이 담긴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는가. 나는 이걸 일명 '고급 어그로'라고 본다.



* 어그로: 원래는 게임 용어로, 인터넷과 SNS 등에서 짜증 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지칭하는 말로 발전함. 주로 ‘어그로를 끈다’는 식으로 쓰임.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하지만, 그 짜증조차 관심이기에 결국은 유명세를 타게 되는 경우도 많음.  





한국사회에서 ‘어그로’의 의미

다소 지루하더라도 완벽에 가까운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모든 반박을 원천 차단해버리도록 검증 과정을 모두 영화에 담았을 수도 있다. 음. 그랬다면,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이 넘었을 것이고 온라인에 공개된 버전을 재미 삼아 보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는 지루함에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았겠지. 결국 영화가 '쫌 밋밋하다'는 평과 함께 세간에 회자될 틈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은 너무 자명한 일. 따라서 이렇게 논란이 될 것을 충분히 알고도 '문제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 영상물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제작자인 김총수가 노린 다른 의도가 있었으리라 본다.





사람들은 모여서 떠들어대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떠들어 대는 재료가, '수학의 정석'인 경우가 있던가? 보통 일요신문을 가지고 이야기 하지, 교과서 가지고 수다 떠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교과서 같은 영화를 만들었을 경우 딱히 흠잡을 데는 없는 완벽한 사회고발 영화는 되었을지언정, 선관위의 입장 표명까지는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기 때문에. 그럼 잊혀졌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어그로'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떤 연예인이 거액을 기부한 기사는 공유 수 100 정도로 조용히 마무리된다면 누군가의 불륜 의혹 찌라시는'퍼나르기 10K'를 가뿐히 찍는다는 말씀이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들 말하는 연예인들의 푸념과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김총수와 최감독은 '무결점 노잼' 영화보다는, '욕받이 문제작'을 택했을 것이다. 결국 이 '광대역 어그로'로 인해 나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더플랜 반박', '더플랜 k값' 등의 검색어로 타고 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 또한, 이 영화에 낚이신 거다. 흐흐. 아직도 한국에서 어그로는, 잘! 먹힌다.









번외: 내가 답답해서 덧붙이는 글

일반 영화도 뚜렷한 목적의식(=감독과 작가의 기획의도)을 향해 달려가는 판에 다큐멘터리, 심지어 이런 문제작이라면 제작진들이 세워놓은 가설 하에 쉼 없이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시라. 팩트만 나열하고 끝날 거면 영화라는 영상물로 제작할 이유가 없지. 이 세상의 모든 창작물은 창작자의 의도라는 게 존재한다. 그 의도를 받아들이고 찬성할지 혹은 수정 보완할지 혹은 전면 반대할지, 아니면 아예 '먹이도 주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할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때문에 영화에서 주장하는 내용 숫자들과 가설에 대한 반박은 당연히 가능하지만(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이래야 마땅하다) 그저 덮어놓고 '함정수사를 한 게 아니냐', '이미 결론을 만들어 놓고 그것만을 위해 기획되었다.'라는 비난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아니 저기 선생님, 기획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도 있나요. 한낱 직장생활자인 저도 보고서를 쓸 때 잠정적 의도와 결론을 가지고 작성합니다. 상사에게 보고하는데 마지막 장이 '짠 이게 끝이지롱. 사실을 나열했으니 니가 어디 결론을 내거나 맘에 드는 걸 골라봥.'이라고 쓰실 수 있는지.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건.


아아 그러니까 중요한 건, K도 P도, M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사실상 카스트제도인 이 나라에서 재용이 형과 나 따위가 유일하게 똑같이 누릴 수 있는 ‘한 표'의 권리마저 온전치 않다는 사실이다. 이제 하다 하다 이 땅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평등한 권리인 우리의 선거권마저 뺏겨야 하는가. 오천 년 역사에서 민초가 직접 지도자를 뽑을 수 있게 된 지 이제 겨우 30년이다. 근데 그 30년에서 4년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앞으로의 5년, 10년도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제 그렇게는 살 수 없지 않겠나. 그게 중요하다.








Ps. 레드준표 또한 영리하게 어그로를 활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근 계속해서 막걸리 한 잔 걸친 시골 노인 컨셉의 발언들을 내뱉고 있는데, 솔까 그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닌 거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계속 나온다. 모두가 욕하는 것 같지만, 이와 비례해서 '대중의 관심도' 또한 계속 확보해가고 있다는 뜻이다. 2017년 대한민국 대선에서도 이 '어그로'는 또다시 먹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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