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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Jun 26. 2024

언제고 훌쩍 떠날 수 있다

휴직의 좋은 점 넷


어차피 다시 돌아올 거면서, 고무줄에 묶인 총알탄마냥 끝없이 밖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한 건

일을 시작하고 한 두 해쯤 지나서부터였다.





타고난 천성이 요즘 말로 ‘E형 인간’이라 밖으로 나도는 걸 좋아했지만 그전까진 그렇게 살래야 살 수가 없었다. 만 19세 이전에는 법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 여서, 만 19세 이후는 돈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그러고 보니 보통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돈이 없으면 시간이라도 있다고 하는데 경제적 독립을 하기 전엔 마음의 여유까지 없었네.)



아직도 사무치게 후회되는 일 하나는 당시 내 우상이었던 기무라타쿠야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참석을 위해 부산에 왔는데! 돈/시간/마음의 여유가 몽땅 없어 부산에 갈 엄두도 못 냈다. 부국제 기간이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기도 했지만, 선뜻 부산으로 향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었던 것 같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용돈을 벌어쓰던 내게 '부산 여행 비용 마련'은 너무 큰 퀘스트였고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나중에 돈 벌어서 가면 되지. 기무라도 또 보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내 최애였던 기무라 타쿠야 실물을 영접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없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later?)





그날 이후로 나는 웬만하면 ‘간다’. 살까, 말까 할 때 안 사기도 하고 먹을까, 말까 할 때 안 먹기도 하지만, 갈까, 말까 할 때 안 가는 선택지는 없다. 그래서인지 ‘못 갔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돈’이 소거되자마자 ‘가기’ 시작한 거다. 그곳이 어디든.



그런데 새로운 복병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그건 바로 ‘시간’. 두둥.



분명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게 확실한 이 재화는 신기하게도 매월 들어오는 돈과 정확히 등가교환되어 내 인생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 다니면서 느낀 ‘시간이 없다’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내 삶의 대부분을 먹어치웠다. 점점 9to6(나이브하게 말해서) 이외의 시간마저 회사에 물들어 가기 시작했고 사실상 내가 일(work)인지, 일이 나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쯤 1년에 단 한 번 없는 시간을 만들어 탈출했다.



약 52주 중 단 1주.



1년으로 보면 찰나의 순간일 수 있는 그 시간을 위해 나머지 51주를 일했다.

돈과 시간을 바꿔가면서, 내년의 1주를 1년 전에 계획하면서.










그런데 휴직을 해보니 1년 전부터 계획하지 않아도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표만 있다면.

(돈은 일단 논외로 하겠다. 그동안 고생한 세월이 있으니!)



회사에 포로처럼 잡혀있어 얼굴도 못 보고 그리워하던 내 오랜 친구 ‘시간’이 광복절 특사 같은 걸로 풀려 내 품에 온 느낌이랄까? 엉엉 그동안 어디 있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너 살아있긴 했구나 엉엉.

그래서, 그냥 훌쩍 떠났다. 크레마(Crema)로. 아래의 과정 없이.



   1. 새해 첫날 팀원들에게 선전포고하기. “6월 첫 주에 저 휴가 갑니다.”(=너넨 다른 때 가렴)

   2. 1월부터 휴가 전날까지 중요한 프로젝트가 그 기간에 걸리지 않을지 전전긍긍하기

   3. 미리 말은 해놨지만, 잊었다고 하면 그만이기에 약 6개월 간 시시 때때로 내 휴가일정을 인지시키기

   4. 마지막으로 내가 없는 기간 동안 이슈가 생기지 않도록(=나를 찾게 하지 않게 위해) 직전까지 야근하며

       일 다 해놓기

   5. 출발 당일 새벽까지 바리바리 짐 싸다가 새벽에 산발머리를 한 채 집 나서기

   shit.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지에서 회사 전화받기…




사실 크레마는 내 오래된 버킷리스트 중 한 곳인데, 그곳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그러하듯 영화 ‘콜 미 유어 바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 이하 콜바넴)’을 너무 사랑해 버려서 그렇게 되었다.


엘리오를 만난 그날 이후 ‘내가 무조건 저기는 가고야 만다’ 다짐했었지만, 생계형 인간으로서 도무지 그곳을 갈 수 있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크레마는 아무 때나 갈 게 아니라, 꼭 초여름에 가야만 했다. 영화를 촬영했던 바로 그 시기에 가지 않으면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할까.



누가 들으면 너무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콜바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그 영화는 계절 조건을 빼면 완성될 수 없는 영화라는 사실을.




꿈에 그리던 초여름의 크레마는 어디서든 엘리오가, 올리버가, 그리고 마르치아가 자전거를 타고 툭 튀어나올 것 같은 곳이었다. 내 인생에서 잠시 맞이한 퍼즈가 그곳에서 다시 플레이되는 느낌도 들었다.


썸웨어 인 노던 이탈리.





콜바넴 리뷰도, 크레마 여행기도 꼭 정리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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