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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행성 Sep 21. 2024

그 분은 뭘 보셨던 걸까

누가 너의 미래에 대해 예언해준적 있어?

난 한 번 있다. 지금도 신기해.


미술판을 떠나야하는 거 아닐까 머리로 생각은 했었는데, 이게 십년 넘게 공 들인 일을, 하루 아침에 무 자르듯 그렇게 될 일은 당연히 아니잖아. 얼마나 애착이 컸다고.


나도 그랬어. 살이 5키로 넘게 빠질 정도로 맘고생 하면서 두번째 전시도 해내긴 해냈어. 두번째 개인전도 그림이 거의 다 팔렸지. 남들은 자기 그림을 그려놓으면 뿌듯하고 좋아하던데,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부족한 부분만 계속 보이더라.


그러던 중에, 정말 정말 되고 싶었던, '유망 신진작가 10명'에 선정됐어. 큰 전시공간에서 몇 달 후 전시도 열어준대. 개인당 부스도 꽤 컸어. 너무 기뻤지만, 그만큼 잘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어. 나와 같이 뽑힌 작가들은 부지런히 작품들을 뽑아내고 있었는데, 나는 한 점도 그릴 수가 없더라.


살이 쭉쭉 빠졌어. 내 키가 171인데 41kg까지 내려가더라. 잠도 못자고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고.

나 포함 미술 작가들은 수입도 일정치 않고 하다보니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 같은 걸 잘 안 받는 경향이 있었어.


견디다 견디다 병원에 갔더니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떻게 병원에 올 생각을 안 했냐고 혼났어.


스튜디오 앞 할아버지 선생님이 계신 내과였는데, 나를 눕혀놓고 옛날 식으로 여기저기 두들기시더라 ㅎㅎ 그러면서 무슨 극심하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녜. 몸과 정신상태가, 전쟁터에 나간 사람의 상태래. 그래서 당장 싸우고 도망갈 상태로 모든 에너지가 팔 다리에 가 있다보니 내장은 기운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릴렉스 할 방법을 꼭 찾아내라. 이런 얘길 해주셨던 것 같아.


근데 전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그려놓은 그림이 한 장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릴렉스를 하겠어 ㅜㅜ 큐레이터샘이 내 작업실에 찾아오셨어. 다른 작가들은 2-30점 씩 그려놓고 10여 점 골라서 전시를 하는데, 나는 완성 된 그림이 하나도 없으니 그 큐레이터샘도 깜짝 놀라셨지.

"2주 전까지도 뭔가 해결이 안 되면 작가님은 이 전시에서 빠져야 해요. 미안해요."

당연한 말인데, 야속해서 눈물만 쏟아졌어.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어디가 고장난 걸까.

알 수가 없었어.


내가 너무 다 죽어가니까, 친한 친구 작가가 너무 힘들면 자기 엄마를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권했어. 친구의 엄마 말씀은 첨 들었지. 엄마가 교회 목사님이신데 기도해달라고 하자고.


마음이 너무 지치고, 괴로웠던 나는 어떤 위로라도 받고싶었지. 그래서 고맙다고, 그러겠다고 했어.


바로 다음날, 친구 어머님을 찾아뵈었어. 친구 어머님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이 아니라 조용히 기도만 하시는 분이래. 잔잔하고 따뜻한 눈 빛에 마음이 좀 놓였어.


그 분 앞에 앉았고, 그 분이 내 손을 잡고 조용히 기도를 시작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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