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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Me Apr 22. 2020

아프리카 타자라열차의 꽃단 년.  

나도 싸우기 싫다.  

아프리카 여행을 할 때에는 참 깡따구 하나만큼은 충만했다. 

무서운줄 모르고 겁도 없이 얼마나 무식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동양인이라 얕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 뜨곤 나는 쫄지 않았어 하는 치와와 마냥 짖어대곤 했었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의도된 성추행과 성희롱 그리고 인종차별 그 속에서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잔뜩 몸을 부풀려 기세등등한 자세가 기본이 되어있어야 했다. 



물론 내 덩치는 몸을 부풀리지 않아도 충분히 불어난 상태지만. 




이유없이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인간들에게 나도 그저 똑같이 해주면 그만이었지만, 

똑같이 저지르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던걸 생각하면 담이 크진 못했나 보다. 





2박3일동안 열차를 타고 가는 내내 멀미 때문에 거의 누워만 있다 시피 했기에 

별다른 일이 생길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2박 3일 동안 식사를 안 할 수는 없었기에, 한 끼는 식당칸에 가서 해결해야만 했는데 

그 곳에서 더럽게 엮였다. 




저녁을 시키기 전, 한적한 식당 칸 풀썩 하고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그리고 이내 풍겨오는 냄새 덕에 아직 가시지 않은 멀미까지 더해져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번 힐끗 보고는 그냥 내가 다른자리에 가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곤 

한번 둘러 보니 동행인듯 동행아닌 한국인 동행이 앉아있는 그 옆자리와 

다른 사람들의 옆자리만 드문드문 비어있을 뿐이었다. 



두리번 거리다 발견한 여자 옆에 가 앉기 전 예의상 한마디 말을 건내본게 문제였을까? 


"여기 앉아도 되니?" 

 

"딴데가서 앉아" 


귀찮다는듯 눈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치켜 올리곤 턱 끝으로 반대편을 가르키며 짜증스럽게 내뱉은 말에 

'내가 뭘 잘못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잘못들은건 아닌듯 했다. 


기분나쁘다고 느낄 틈도 없이 당혹스러운 감정이 앞서 대꾸할 틈도 놓쳤다. 



'하아..뭐지..진짜 ㅈ같네' 

혼자 조용히 욕짓거리를 내뱉고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앞서 있던 일은 꾹꾹 눌러담고 미소를 장착했다.



"여기 앉아도 되니?" 


돌아온 대답은 참 엿같이도 니가 앉을 자리는 여기 없다는 답변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

'여기 식당칸이 아닌가? '

'뭐 여기는 흑인칸이야? 흑인들만 앉아야 되는건가? '

'하나 같이 나한테 왜 이러지? '




다시금 욕짓거리가 치고 나오는걸 꾹 눌러대고 한국인 동행 옆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불편해 하는 것 같았기에 앉고 싶지 않았던 건데,

옆에 앉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후에 또 후회를 남긴다. 



동행 옆에 나란히 앉았고 그 앞엔 식사를 하려는 아줌마 하나와 아는 사이 같이 보이진 않은 또 다른 아줌마 하나 이렇게 둘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자기 식사는 시키지도 않고 술에 취한건지 약에 취한건지 옆에 아줌마 밥을 건들였다가 얻어먹었다가 

무언가 정신 사나운 듯 보였다. 


아는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아는 사이였나? 라는 추측만 하면서 그저 흥미없는 듯 무심하게 힐끗 힐끗 중간 시선이 갔다.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쭉 뻗어져 내 자리에 있던 쌈장을 가로채갔다. 



'뭐하는 짓이지..?' 


어이가 없어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쳐다보던지 말던지 관심도 없다. 

그리곤 뚜껑을 열려는 그 정신나간 아줌마에게 돌려달란 제스처의 손과 함께 한마디 뱉었다. 



"그거 내건데" 




그러자 눈을 내 쪽으로 치켜뜨더니 기분나쁘다는 듯 

테이블위에 살짝 던지듯이 돌려주곤 비아냥 거리기를 시전한다. 



한숨을 길게 나온다. 

내가 내 물건 돌려받는데 왜 이딴 소리를 들어야 하지?

 



"하아.. 그러게 왜 묻지도 않고..."

이 말의 끝까지 듣기나 했음 속이 좀 덜 뒤집어졌을까 



한참이나 내 말 듣지도 않고 욕짓거리를 내뱉던 그 여자는 이내 분이 안풀렸는지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떠들어대며 비웃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도 같이 낄낄대며 웃는 소리에 알아듣는 거라곤 차이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비하 발언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아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앞서 다른 자리에 잘 앉았더라면 적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입을 막아버리는 상황에 입 대신 손가락이 올라갔다. 



그리고 자기에게 뻐큐를 날렸다며 동네사람들 시전하며 방방 뛰던 정신 나간 아줌마를 

상큼하게 무시하고 무식하리만큼 큼직큼직하게 썰어낸 고기를 입에 쑤셔넣고 

귀를 막았다.




한국에서 조차도 저 정도의 말은 면전에 대놓고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지금 나를 앞에 두고 해변을 찾는 건 아닐테니, 그저 듣고 흘리기가 점점 더 거북해져왔다. 



어차피 못알아 들을 거 나도 하고 싶은 말이라도 좀 하자.

 

"그러길래 왜 남의 물건을 묻지도 않고 손을 대냐고 병신아" 


그리고 싱긋 웃어보인다. 

눈치는 드럽게 빠른지 욕하는건지 어떻게 알았을까 



"너 지금 뭐라고 한거야?? 영어로해!!!" 



"싫은데? 너도 니네 나라 말로 떠들어 놓고 나보고 영어쓰래" 

역시 사람은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십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네 




그렇게 하고싶은 말 실컷 하고 나니 이제는 아무리 심한 욕이 들려와도 

개의치 않게 식사를 이어간다.




눈 앞엔 삿대질 하는 손가락이 왔다갔다 해도 그저 묵묵히 질긴 고기를 

살기 위해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그 정신 나간 여자가 무서웠던건 아니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로 쏠려서 인지 덜덜 떨리는 손을 나이프와 포크를 꽉 쥐고 

고기 써는데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옆에 있는 내 동행에겐 최대한 예의있는 척 너에겐 미안하다고 하고 있으니 

내 편을 들기가 무안해서 였는지 작게 그냥 무시해요 한마디를 건내곤 

딴 세상인양 느긋하게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내 기분은 

그래 그저 기분 탓이었겠지. 



우겨넣은 마지막 고기를 입에 물곤 잘근잘근 씹어 삼키곤 작별인사를 건냈다. 



"나 간다 병신아" 

벌떡 일어나 가고 있으니 뒤가 소란스러워 쳐다보니 

한대 칠 기세로 따라 일어나 쫓아오는걸 주변 사람들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는지 아줌마를 붙잡고 말리고 있었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그 와중에 무슨 주마등 마냥 별의 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먼저 맞고 때리면 여기도 정당방위가 성립이 되나?'

'맞으면 ㅈㄴ아프겠지..? 나보다 키가 작으니까 나는 발로 차야 하나..'

'뚱땡이라 안날라갈 것 같은데.. '

'초등학생 이후로 몸싸움은 해본적이 없는데 하물며 흑인인데 내가 지겠지? '

'아.. 대사관에 연락해서 뭐라고 해야 하지' 

'추방되려나?'



15초 남짓한 그 시간동안 붙잡혀서 버둥거리는 꽃단년을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다행히 붙잡고 있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그냥 무시하고 내 열차칸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문을 열어재끼고 나를 찾아다니려나 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딘가 제 정신 아니여 보이는 모습에 그렇게 까지 하진 않을 것 같아 내심 안도한걸 보면 

그 싸움이 내 감정에 많은 타격을 입힌건 분명한 것 같았다. 



철컥- 



문열리는 소리에 들어오는 나를 동시에 쳐다보던 열차메이트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 표정에 적잖아 놀란 눈치로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내 편하나 없던 것 같은 그 곳에서 내 편이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니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식당칸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다 떠들어대니 

제 일인 마냥 화내는건 한국인이랑 똑같은가보다. 



"그년 어딨니?"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처럼 같이 화내는 모습에 그제서야 웃음이 새어나왔다. 


"괜찮아, 어차피 취한 것 같았어" 

한번 꼬옥 안아주고 등을 한번 토닥여준다. 



그리고 얼마 뒤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들겼다. 



"괜찮아요? 그렇게 가고나서도 말리던 아저씨랑 또 싸우더라구요. "

하며 음료수 한병을 건냈다. 



고마운데 고맙지 않은 기분이랄까 



그래 나도 안다. 남의 일에 함부로 끼기 쉽지 않다는거 

그리고 특히나 싸움에 끼어들기 쉽지 않다는거 

근데 그냥 나는 그 사람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같이 싸워주지 않아서는 결코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다. 



' 나였으면 ' 

' 나였다면 ' 

이란 생각들로 나를 또 괴롭힌다. 



그리고 후에 그는 대체 뭘 보고 들은건지 자기였음 쌈장을 나눠줬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에 

얼마나 빡쳤는지 몇날 며칠을 분노에 휩싸여 발차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고작 그게 아깝다고 싸웠을까봐? 

누군가 주면 안되냐고 물었더라면 부피만 차지한다며 통채로 건내주었을 만큼 

나에게 귀중하지 않았기에 더 어처구니 없었다. 



빌어먹을 쌈장이 뭐라고.



적어도 내거라고 말했을 때 

테이블에 내동댕이 치듯이 돌려주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이게 뭐냐고 물어봤더라면 

흔쾌하게 한국 전통 소스라며 한번 먹어보겠냐고 먼저 권했겠지 



알겠냐 이 개자식아 




지옥같던 타자라 열차의 이튿날이 화려하게도 지나간다. 

더럽게도 화려하고 그래서 서글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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