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기다리며 생중계를 봤다. 그는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과 러시아군의 비인도적 행태를 고발했고 또 러시아의 침략 목적은 단순히 우크라이나 점령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민족, 언어, 문화를 말살하기 위함이라며 우리나라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이주혁 의사의 글을 읽었다. 그는 어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보면서 백여 년 전 대한제국 황제 광무제(조선의 고종. 이후로는 편의상 고종으로 칭하겠다)가 보낸 헤이그 특사 3인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여 년 전 청 제국, 러시아제국, 일본제국은 대한제국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치렀다. 전쟁 결과 일본제국이 승리했고 대한제국은 멸망 직전에 내몰렸다. 1907년 고종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모험 수를 두었다. 바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만국에 알리려는 것이었다. 그는 특사들에게 "내가 살해돼도 나를 위해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마라. 너희들은 특명을 다하라. 대한제국의 독립주권을 찾아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고종을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그의 진심만은 부정하지 않는다. 황제가 자신의 목숨을 걸었으니 특사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헤이그에 도착한 이상설, 이준, 이위종은 본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일본제국의 격렬한 방해와 열강들의 철저한 무관심. 대한제국의 마지막 불꽃은 그렇게 허망하게 꺼졌다. 이후 일본제국은 분노하여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고 1910년 대한제국은 멸망했다. 불과 112년 전 우리 이야기이다.
우크라이나와 대한제국은 상황이 다르다. 일본제국은 대한제국의 수뇌부만 굴복 시켜 나라 전체를 손쉽게 흡수했다. 병탄 과정만 놓고 보자면 인민들의 피해는 적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 국토를 공격하는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도시들은 완전히 초토화됐고 민간인 희생도 어마어마하다.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 GDP가 이미 절반으로 반토막났다고 보도한다. 참혹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무기만 지원해 준다면 러시아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세계 열강들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규모가 훨씬 작은)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국회도서관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고작 50여 명이라고 한다.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불과 115년 전 우리가 헤이그에서 당했던 치욕을 잊었는가. 열강들로부터 외면받아 좌절했던 고종과 특사들을 잊었는가. 우리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가.
우리가 헤이그 특사를 배우듯이 훗날 우크라이나인들도 이번 전쟁에서 겪은 좌절을 배울 것이다. 그들이 2022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지 생각만 해도 낯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