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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Oct 09. 2023

#3: 로마(2)

산책, 포로 로마노

    당시 유행하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던 터라 로마에 대한 환상이 생겼었다. 환상이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지만 로마는 그 경우에 속하지는 않았다.

    로마는 길들이 대개 구불구불했다. 동서남북으로 반듯하게 난 길은 거의 없었다. 예를 들자면, 북쪽으로 주욱 걸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던 길이 알고보니 동쪽으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휘어져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동쪽으로 걸어가게 되는 식이었다. 빡빡하게 계획한 여행이었다면 길을 잘못 들어 낭패를 보기 딱 좋았지만 내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주변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몇 시간이고 걷다가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할 때가 오면 지도를 펴 들고 위치를 파악하곤 했다. 처음 가는 도시에서 지도를 보고 위치를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지도를 보여주면 여기가 어딘지 알려달라는 몸짓을 하곤 했다. 이탈리아어는 인사말과 고맙습니다 외에는 전혀 하지 못했기에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또는 눈에 보이는 지하철 역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지하철은 든든한 길잡이다. 가야 할 역 이름만 알면 전체 노선도와 표지판이 확실하게 길을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로마는 걷기 편한 도시는 아니지만 걸으며 구경하기 좋은 도시였다. 보도블럭이 온통 울퉁불퉁한 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편한 스니커즈를 신고 온 나로서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파왔다. 하지만 걸으면서 정신없이 도시를 구경하다보면 아픔이 잊혀져갔다. 로마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양 쪽이 건물로 막힌 작은 골목을 걷다가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큰 거리로 나오면 어느 순간 트레비 분수로 유명한 광장이 나왔다. 광장을 둘러싼 카페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과 분수 난간에 앉거나 기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또 작은 골목들을 걷다 보면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이 나왔다. 널찍한 오르막 계단에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홀로 혹은 함께 앉아 저마다의 기분 속에 빠져 있었다. 로마에 왜 스페인 광장이 있는지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도 못했지만 그 널찍한 계단길에 대한 이미지만은 생생하다. 앉아있으면 곧 공연이 시작이 될 것만 같은 그런 넓고 북적북적한 계단이었다.

    로마는 작은 거인국같았다. 한참을 걷다 보면 콜로세움, 판테온, 그리고 이름 모를 거대한 건축물들이 거인들의 어깨나 머리처럼 불쑥불쑥 등장했다. 여전히 옛 시간에 잠긴 도시 같았다. 이따끔씩 지나가는 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만이 지금이 21세기임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어느 순간 나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 당도했다. 포로 로마노는 예상보다 매우 좁았다. 내가 예상을 너무 크게 잡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포로 로마노는 로마 제국 시대에 중대한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우리가 책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보았던 정치적 암투, 감동적인 연설, 원로원 회의, 암살, 선거 유세, 그 외 모든 무겁고 중요한 결정들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던 주요 건물들이 그 좁은 부지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었다. 작아서 실망스러웠다기보다는 신기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 그 거대한 일들이 일어났다니.

    그 때에는 포로 로마노를 보면서 20대가 가질 만한 원대한 목표나 꿈을 다짐했던 것 같다. 살면서 처음으로 직접 본 정치 유적지라 그동안 읽었던 책과 공부했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휘몰아치며 재정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남은 것은 그랬었다는 기억 속 흔적 뿐이다. 당시에는 앞으로 내 인생에 엄청나게 대단한 일들이 펼쳐지고 매 순간 극적인 극복을 해 나가면서 그 당시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는 해내지 못할 일들을 해낼 줄 알았다. 물론 그 때에는 그래야 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무언지도 몰랐고, 어차피 현실이 무언지 몰라야 할 나이였다. 지금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비현실적인 꿈과 희망을 만들고 즐길 것이다. 그 때에는 그것이 최선이다. 그 때의 나를 보고 나서 지금의 나를 보면 얼마간 씁쓸해지긴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생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현실을 몰라서는 위험해 처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꿈과 목표는 가졌지만 현실이라는 제약조건을 무시했다가는 생생하고 날카로운 위험이 덮쳐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때 나는 유명 언덕들로 둘러싸인 포로 로마노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하여, 한니발에 대하여, 스키피오에 대하여, 당시 로마의 막강한 건축술과 도시공학에 대하여,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하여, 로물루스 신화에 대하여,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에 대하여 생각을 했다. 20대 특유의 겉멋에 취해 있었다는 뜻이다. 제대로 공부하거나 읽어 본 것은 그 중 몇 없지만 '로마 제국'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나 사건이나 기술을 마음대로 떠올리고는 그것들을 제대로 느낀다고 여겼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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