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 신전, 공포
20대 초반 당시 내가 신전에 대해 가졌던 감정과 생각을 지금와서 완전하게 되살리기란 불가능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외모도 나이를 먹어 그때와는 조금 바뀌었고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을 새로 배웠고, 잘못 알았던 것들을 폐기하였으며, 삶의 양식도 바뀌었고 바라는 바들도 보다 더 현실적이 되었다. 여전히 주변으로부터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듣긴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배낭 하나 메고 무모하게 돌아다니던 그 때와 비교하자면 너무나도 세속화되었다. 그러니 그 때 내가 신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를 오롯이 되살리기란 불가능하다.
불완전한 되살리기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위험하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보다 더 멋진 젊은이로 치장하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와 그 과거 속 추억이 아련함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들을 애써 꾸미기 때문이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생각해내려고 해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늘 과거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꾸미게 된다.
나는 아마도 거대한 신전에서 계시라도 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내가 신전을 찾는 이유에 대해 최대한 역사적인 이유나 과학적인 이유를 댔다. 즉, 신전에 찾아가는 행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과 진심은 다르다. 이런저런 사실 속에 가려진 진심은 어쩌면 거대한 신전을 거닐다가 무슨 해답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현실적 좌절감과 늘 함께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모든 현실적 제약과 한계들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고 훨훨 날아다닐 능력까지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부인하던 때였다. 무언가에 대한 열정도 넘쳤고 열망도 컸지만 원망과 질투심이 뒤엉켜있기도 했다. 어쩌면 올가미같은 현실적 제약 때문에 무한을 느낄 수 있는 어딘가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파르테논 신전은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였고 상당 부분이 복구가 되지 않은 채였다. 남아있는 부분들로 원래의 모습을 추정해볼수는 있었지만 복구를 위해 설치된 철골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상상력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그 위용은 엄청났다. 무엇보다 자리가 좋았다. 사방으로 아테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위치한 신전. 이보다 더 신전스러운 자리는 없지 않을까.
당시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는 어떤 느낌을 받았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철골이 보이지 않는 각도를 어떻게든 잡아서 사진을 찍어 둔 기억만이 남았다. 아마도 그 후에 이집트에 가서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기에 파르테논에 대한 기억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찾던 무언가는 파르테논 신전에는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을 감상하고 아크로폴리스 내리막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던 중에 고대 그리스 원형 극장을 보았다. 수많은 희곡 연출가들이 작품을 들고 그곳에 와서 공연을 했을 것이고,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원형극장 의자에 앉아 감상을 했을 것이다. 그 희곡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전해져내려오며 어떤 작품은 명작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실로 수천 년 전 작가가 쓴 희곡 혹은 서사시나 산문들을 보면 모든 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간의 어떤 능력들은 시대가 지나면서 오히려 퇴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한 것은 과학과 기술 정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한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에 잠기는 능력이나 긴 이야기나 글을 잘 듣고 잘 읽는 능력은 지금 사람들이 많이 떨어지지 않나 싶다. 배울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현대로 올수록 그 수준이 높아지는 편이지만 개개인의 노력에 달린 무언가는 평균적으로는 점점 퇴화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개인만 해도 그렇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봤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면이 더 발전하였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때 더 노력했던 것들은 지금보다 그 때가 더 나았다.
파르테논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제우스 신전이었다. 제우스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파괴는 되었지만 일부 형체는 남아있던 파르테논 신전과는 달리 제우스 신전은 기둥 한두개와 주춧돌 자리 정도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신전다운 느낌이 들었다. 거의 폐허에 가까운 그 상태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복구작업을 위한 철골들이 시간을 뛰어넘는 상상을 방해했지만 제우스 신전에는 그런 방해요소가 없었다. 거의 신전 터만 남은 상태라 그런지 관광객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터만 남은 그 자리에서 느낀 위압감은 새롭고 신선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기대하고 바라던 무언가는 없었던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그 날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유형의 공포를 체험했다. 아마도 제우스 신전을 찾아가던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이드북에 안내된 길은 멀리 빙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지도를 보니 돌지 않고 가로지를 수 있는 길이 있어보였다. 갈증이 꽤 심한 상태였지만 가로질러서 반대편으로 나가면 무슨 가게라도 있겠지 하는 생각에 길 입구에 있던 상점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겁없이 지도만 믿고 걷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되어있을 정도로 꽤 먼 길이었다. 하지만 일단 걷기 시작했다. 시간은 많았고, 걷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갈증이 심한 상태에서 대중교통이 추천될 정도로 꽤 먼 길을 지도 한 장 들고 지름길 가로지르기를 시도했다.
한 40분, 50분 정도 걸었나. 정말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의 갈증이 왔다. 지도상 표시된 가로지르는 길을 거의 다 온 상태라 조금만 걸으면 물을 사 마실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거의 비틀대듯 걸었다. 겨우겨우 길의 끝자락에 닿았는데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길이 완전히 막혀있었다. 그대로 몇십미터만 가면 맞은편 도로가 나오는 상황인데 그 몇십미터의 길이 완전하게 끊겨있었다. 담장이 높게 쳐졌고 문으로 보이는 무언가에 쇠사슬과 자물쇠가 감겨있었다. 너무도 절망적이었다. 화도 나지 않았고 화를 낼 힘도 없었다. 드느니 후회감 뿐이었다. 이미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제대로 걸을 힘조차 없었다. 그 길로는 다니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이 길이 좀 이상하다고 알아챘어야 하는데 당시 나는 철없이 아무도 모르는 길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좋아했다. 그런데 길이 끊기고 없다. 다른 방법도 없다. 40분, 50분을 걸어왔던 길을 하릴없이 다시 돌아가야 한다. 몸은 이미 탈수증세를 보였고 힘도 다 빠진 상태였다. 게다가 6월의 아테네는 무더웠다. 해가 늦게 져서 어둠이 깔리지는 않았지만 해가 오래 떠있는만큼 열기로 인한 피로도는 증가하기만 했다. 일단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끝까지 걸어갈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걷고 또 걸었다. 그 길을 어떻게 다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정신은 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쓰러질듯 걷고 또 걷다가 쓰러지기 직전에 그 길을 다 걸어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가게에서-식당이었는지도 모르겠다-물을 사서는 정신없이 들이켰다.
기행문식 소설이나 역사 소설, 또는 판타지 소설을 보다 보면 극심한 갈증과 관련된 표현들이 나온다. 그 일을 겪기 전에는 나는 생명에 위협이 느껴지는 극심한 갈증이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일을 겪은 후로는 그 표현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상태다. 그 뒤로는 약간이라도 불확실한 길을 갈 때면 물은 무조건 챙겨서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