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움(Audeum)

2025.11.20

by Nous

오디움은 오디오(audio)와 박물관(museum)을 합쳐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곳은 무료 예약제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전시된 소장품들이 극도로 희귀한 초고가 제품들이기에 이러한 운영 방식은 꽤나 놀라웠다. 안내 직원이나 도슨트 등에게 지급되는 급료를 위해서라도 적게라도 입장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개관한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도 무료로 운영 중이다. 그래서인지 예약이 쉽지는 않다고 들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예약 사이트에 접속했다. 운 좋게 바로 다음 날 오후 시간 예약이 가능했다. 개관을 한 지도 1년 반 정도가 되었기에 이제는 초반만큼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지도 모른다.


추천 외에는 별다른 정보 없이 방문했기에 투어 시작 전에 한 가지 염려가 들었다. 무슨 목적으로 만든 공간일까. 만약 어떤 돈 많은 사람이 소장품을 자랑하려고 만든 공간이라면 방문 의미가 없어질 일이었다. 오디오 기기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구경하는 의미가 없다. 그저 죽은 기계에 불과하다. 얼마나 비싸든, 얼마나 희귀하든 그저 구경만 해야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무력하게 과시를 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될 뿐이다.


도슨트가 ‘여러 기기들이 내는 소리를 직접 들어 볼 것입니다‘라고 말하자마자 그런 염려는 사라졌고 그 자리를 기대감이 메웠다. 기기들이 내는 소리를 직접 들려준다면 이는 과시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도 그런 관람을 무료로 진행한다면 이는 사회환원활동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중요하면서도 극히 드문 음향기기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보유한 사설 박물관이 유능한 도슨트까지 붙여가며 무료로 청음 관람을 진행하는 경우는 나는 보지 못했다. 이는 본인이 수집한 기기가 아닌 본인이 수집한 기기가 내는 소리를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그리고 여러 도시를 다닐 때 음악공간은 반드시 챙겨서 다녀보다보면 시간과 기술과 소리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음향기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 좋아지는걸까, 관련 기술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발전하는게 맞을까. 빈티지(vintage) 스피커나 앰프를 듣고 감탄하는 경험은 그저 불분명한 노스탤지아일까 아니면 실제로 그 시대에 만든 그 기기들이 지금보다 뛰어난걸까. 그저 현재 나오는 제품들과 다른 소리가 나기에 인상적인걸까, 아니면 실제로 질적으로 뛰어난걸까. 이 ‘질적 우위’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기준 혹은 판단기술은 세상에 없다. 다만 경험과 지식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판단할 뿐이다. 그 경험과 지식만은 인간적 실재에 가깝다고 본다.


오디움을 관람하면서 그 동안 여기저기 다니며 하던 생각에 더 확신이 들었다. 기술 역시 시간에 따라 더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모든 위대한 기술이 보전되지는 않는다. 기술은 시간과 시대에 관계없이 확률적인 경우가 많아서, 한 번 잊혀져버린 기술은 시간이 흘러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오디오 기기 분야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대량생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들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많이 사라졌다. 대량생산에 도움이 되는 기술만이 주로 살아남았다. 물론 대량생산에 대한 집착은 또 다른 뛰어난 기술들을 만들었고, 이는 오디오 기기가 소형화되고 대중적으로 되는 데에, 가성비를 갖추는 데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 편의성의 발전이 꼭 질적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인간은 인간적일수록 질적인 면을 외면하지 못한다. 이상하게도 계속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리고 그 찾는 것들이 꼭 최신제품들은 아니다.


음악을 매체에 녹음하고, 재생기를 통해 그 매체에 담긴 소리를 풀어내고, 이를 증폭시켜서 스피커로 출력하는 원리 자체는 스위스 오르겔이나 에디슨 축음기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원통형 매체보다는 편의성이 높은 원반형 매체(vinyl, CD 등)가 살아남았고, 드라이버나 진동판은 초기 기술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녹음이 잘 되었다고 가정하면, 예나 지금이나 그 잘 된 녹음을 그대로 재현해 내기가 음향기기가 지향하는 바이다. 이는 ‘인간이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에 제작자가 그 지향하는 바에 얼마만큼이나 열과 성을 다하는지와도 연관된다. 개인적인 광기도 중요한 재료 중 하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광기서린 결과물들이 꼭 경제적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음향기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인 제임스 B. 랜싱(Jame B. Lancing)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오디움 관람을 통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소리 감각을 경험했다. 어쩌면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경험일지도 모르지만 한 번 들어보는 경험으로도 판단이나 생각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스피커와 앰프가 서로 어떤 관계인지도 생각해보았다. 오디움이 소장한 엄청나게 오래 된 뛰어난 스피커에도 최신식 앰프가 붙은 경우가 많았다. 아마 그 스피커들이 제작된 당시에는 내가 들은 엄청나게 뛰어난 소리가 나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녹음기술 및 앰프가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 스피커들이 지닌 능력을 최대치로는 끌어올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즉, 지금보다 뛰어난 소리를 내는 그 스피커들이 그런 소리가 난다는 사실 역시도 현대적인 기술 덕분에 증명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옛 기술자들이 지였던 열정과 시간과 함께 발전한 현대적 기술이 합쳐져 그 스피커들이 내는 소리를 지금 우리가 듣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옛날에 만들어진 그 명품 스피커들 역시도 현대 기술덕분에 다시 살아난 셈이다.


두 시간 정도 되는 관람 일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어떻게 이런 관람이 무료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장료 대신 판매제품이라도 사야 하지 않을까 싶어 참으로 오랜만에 기념품을 진심으로 구입했다.


음악감상을 좋아하고 ‘소리’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방문하기를 권한다. 단언컨데, 이런 공간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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