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0
개점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가게 의자 8개 정도가 다닥다닥 붙은 임시 침대가 보였다. 의자 등받이 때문에 누가 누웠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몇 초 지나자 사장님이 그 간이침대에서 스윽 일어나신다. 미안하거나 당황하기보다는 예의 그 또 왔구나, 하는 반가운 표정 뿐이다.
임시 침대를 만드느라 테이블들은 다들 원래 위치에서 이탈한 상태였다. 전날에도 방문을 했었기에 나는 테이블들 위치를 대략 기억했고 얼떨결에 사장님과 같이 테이블이며 의자를 원위치로 되돌려놓았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말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늘 하던 것처럼 의지와 테이블을 정리했다. 가게 상태가 왜 그랬는지를 일본어로 아무렇지 않게 설명해주시는 듯 했지만 나는 그 내용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이볼을 한 잔 주문했다. 무슨 위스키를 쓰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맛이 썩 좋았다. 위스키 병 모양과 투명한 병에 비쳐 보이는 라벨 뒷모양을 보니 부시밀이 아닌가 싶었다. 어제 마셨던 진토닉이 마음에 들었어서 진토닉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왜 입에서 '하이볼'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그 잔에 이어 진토닉도 한 잔 주문했다.
사실 곡 하나를 Bar N 사운드 시스템으로 꼭 들어보고 싶었다. 손님도 없고 정리도 같이 도와드린 김에 혹시나하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리니 여전한 표정으로 그러라고 하시며 곡 이름을 물어보신다. The Allman Brothers Band가 1971년 Fillmore East에서 라이브로 공연한 In Memory of Elizabeth Reed. 내가 이 곡을 그 사운드 시스템으로 들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희대의 라이브 명곡이어서이기도 하지만 악기 구성이 화려한 곡이기 때문이었다. 키보드 하나, 기타 둘, 베이스에 드럼이 둘이었다. 더블 드럼 음악을 이 시스템으로 들으면 어떤 소리가 날까, 날카로운 기타 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13분짜리 대곡이지만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백 번은 넘게 들었을텐데 들어도 들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명곡이면서도 들어도 들어도 들을게 더 생기는 그런 곡이다.
Bar N 사운드 시스템은 이 곡도 훌륭하게 뿜어냈다. 심지어는 지금껏 못 들었던 소리까지 명확히 뿜어냈다. 워낙 여러 번 들은 곡이기에 내가 못 들었던 소리가 남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놀랐다. 앰프 볼륨은 어제보다는 컸지만 그리 높이지도 않았다. 대화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섬세한 소리를 분명하게 표현해냈다. 이는 스피커 혼자서도 앰프 혼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둘이 잘 조합이 되면 어떤 소리가 가능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예시같기도 했다. 그 찰떡 조합이 영국 50년대 스피커와 일본산 앰프라니 이 역시도 흥미로웠다. 음향 기기에 대해서는 귀동냥으로, 어깨 너머로 약간 구경한 것이 다일 뿐이라 기술적인 면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리 자체가 놀라운 수준이었다.
사장님은 Allman Brothers Band는 처음 들어봤다고 한다. 어제도 느꼈지만 확실히 락 쪽은 취향이 아니신가보다, 하는 순간 뒤이어서 Joe Bonamassa가 치는 기타 소리가 스피커에서 뛰쳐나온다. 블루스 락도 좋아하시는구나, 하면서 저도 이 기타리스트 좋아합니다. 특히 베스 하트와 같이 한 앨범요. 라고 하니 반가워하시며 난 몇 곡 잘 모르긴 하는데 좋더라, 라고 말씀하신다. 솔직함 그 자체인 분이다.
그 뒤로는 내가 잘 모르거나 잊었던 아티스트도 종종 섞인 곡들이 주욱 흘러나왔다. B.B. King, Muddy Waters, Albert King, Bob Dylan, Tom Waits, James Brown등은 친숙했고 Albert Castiglia나 Tracy Chapman은 생소했으나 마음에 들었다. 사장님은 내가 Tom Waits를 꽤나 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신 듯 보였다.
이틀 연속 방문했지만 여전히 가게에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평일인 영향도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주말 분위기가 어떤지 한 번 보고 싶었지만 나는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날이기에 들을 곳이 두어 군데정도 더 남은 상황이었다.
한 9시가 좀 지나서 이제 가봐야겠다고 말씀드리니 아쉬워하시는 기분이 표정에 역력하다. 마지막 날이라 약속이 두 군데 있어서 어쩔수가 없다, 다음에 후쿠오카에 다시 오게 되면 꼭 다시 들르겠다고 영어와 서투른 일본어를 섞어서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다시 본래 표정으로 돌아와 선하게 끄덕끄덕하신다. 계산을 하고, 서로 몇 차례 인사말과 악수를 나누고 나는 가게에서 나왔다.
여운이 짙은 공간이었다. 뉴욕에서는 무얼 하셨던건지, 후쿠오카에는 언제 다시 돌아오신건지, 성함은 어떻게 되는지, 어쩌다가 음악 바를 차리게 되셨는지 등 궁금한 것 투성이었으나 아껴두기로 했다. 이틀간 그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 겪은 경험은 꽤나 긴 시간동안 내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