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내 단골 커피집에는 책이 많다. 커피집이지만 커피 관련 책은 손가락 열 개를 다 채우려나 싶을 정도로 적다. 대부분이 음식 관련 책이다. 프렌치, 일식, 채소, 제빵, 파스타, 버거 조립법, 삐에흐 가니에흐, 노마, 내추럴 와인, 이런 책들이 많다. 아마 그래서 이 집 커피맛이-내 입맛에는-살면서 다녀 본 커피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소설이나 수필은 별로 없다.
책장을 채운 책등들을 훑어보던 시선이 잠깐 멈췄다. 박노해. 그 이름은 들어 익히 알지만 저서를 읽어 본 적은 없었다. ‘눈물꽃 소년’. 수필이었다. 시인이 쓴 수필. 한글 문장과 관련되어 최근에 하던 고민들이 떠오르면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히 강하게 들었다. 책을 집어들고 자리로 돌아와 몇 쪽 읽었다. 시인에게 산문은 쉬운 것일까. 읽어내림에 어떠한 불편함도 거슬림도 없는 문장들이 줄줄 이어졌다. 다 읽어봐야겠구나 싶었고 결국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내려갔다. 그 사이에 내가 차지한 탁자에는 음료가 세 잔이 쌓였다.
진솔하며 내용도 좋은 문장으로 가득 찬 한국어 산문을 마지막으로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다. 독특하거나 형식을 파괴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기본에 충실하고 호응이 자연스러운 문장. 그런 책을 너무도 오랜만에 만났다는 사실은 부족한 내 독서량을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내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인데, 언제부터인가 영어로 된 책이 손에 잡히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슬프게도 ‘착착 읽히는’ 문장이 영어 쪽에 더 많아졌다.
사용하는 문법이 표준적이어도 좋은 문장은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이 그 언어를 얼마나 오래, 많이, 잘 가꾸어왔는지가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그 두 언어로 된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었다. 한 언어가 지닌 단어, 관용어, 비유, 상징은 그 언어를 가꾸면 가꿀수록 풍부해지고 짙어진다. 그러려면 그 언어로 많이 쓰고, 그 쓴 글들을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 이 고리가 끊기는 순간 그 언어는 퇴보하게 된다. 표현법, 표현력, 문법, 표기법, 공통성 등 모든 면에서.
눈물꽃 소년.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반가운 책이었다. 그래, 한국어로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지. 아직 이렇게 쓰는 분이 계시는구나. 처음 얼마간은 그런 반기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나타나도 문화적 공통이해로 그 느낌과 뜻이 와닿았고, 심히 오랜만에 본 단어도 구시대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잘 가꾼 개인 정원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쪽 번호가 올라갈수록 반가움과 함께 감탄이 밀려들었다. 문장에 안정감을 느끼다보니 내용도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밀려들어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사셨던 분. 게다가 인생 후반부가 아닌 최전반부에 대한, 초등학교 졸업 까지만 기록한 수필. 자칫하다가는 2024년에 무슨 이런 현재와는 아무 관련없는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나, 싶은 느낌을 독자에게 줄 위험도 컸다. 이 책처럼 비난이나 비판 없이 이야기만으로 진의를 담기란 뛰어난 내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책이다. ‘눈물꽃 소년’ 속 소년은 가족 속에서, 친척 속에서, 친구들 속에서, 동네 속에서, 마을 속에서 자라난다. 온 마을이 아이들을 같이 키우던 시절.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과 도덕과 정의를 자연스러운 경험 속에서 터득하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수많은 만남 속에서 ‘운’ 혹은 ‘인연’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은인과 귀인들을 만나게 된다. 한 소년이 그렇게 자라나던 시절이 이 책 속에 담겼다. 그 안에서 소년은 칭찬도 받고, 꾸중도 듣고,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우고, 가려내는 법을 배우고, 어떤 삶을 살지를 자연스레 고민하게 된다.
물건과 편의를 위한 기술은 지금과 비교도 못하게 낙후된 시절이었다. 그 면에서는 현재가 과거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런데 그 시절 그 이야기가 왜 마음에 와서 닿을까. 아마도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느끼는 인간만이 가진 진화 방식과 관련한 공명이 아닌가 싶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을 한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기술도 포함되지만, 말 그대로 문화적 진화도 포함된다. 선대가 언어와 관습을 후대에 넘겨주면 후대는 그것을 더 발전시키는 그런 과정을 통해 한 문화권은 문화적 진화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낡아버린 시점이 오면 그것을 타파하고 아예 새로운 무언가를 창발시키기도 하지만, 그 역시도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문화적 진화로 인해서만이 가능하다. 이 문화적 진화의 역사가 길게 이어져 온 문화권일수록 가치관이나 문화 기반이 좀 더 인간적이고, 문명적이다. 그것이 끊겨버렸거나 짦을수록 그 문화권은 이분법적 판단기준을 가지며 구성원들은 보다 동물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언어적으로도 퇴보하게 된다.
‘눈물꽃 소년’을 읽어내려가면서 현재 주변에서 보이는 육아, 혹은 유아교육에 대한 현상, 그리고 현실에 대해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이는 한 문화권에 속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연상작용이었다. 한 아이의 육체적 생명을 지켜내는 기술은 현재에 와서는 이 책이 다루는 시절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과연 현재 이 사회가 한 아이를 인간적인 특성 면에서도 잘 키워내는 중일까. 문화적 진화가 이어지는 중일까. 문화적 진화를 하려면 육아에 관련된 물질과학기술(주로 의학 및 편의도구) 외에도 아이가 인간적 특성을 잘 길러내면서 자랄만한 환경도 발전해야 한다. 이 면에서는, 이 사회는 과거보다도 점점 더 길을 잃어가지 않나 하는 염려가 들 때가 많다. 부모 세대가 점점 문화적 길을 잃는다. 문화적 길을 잃은 상태로 부모가 된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선택지도 몇 없다. 특수한 환경을 지닌 사람들이 아닌 바에야 급한대로 기능적인 장점들만 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지운다. 아주 가끔은 이 소모적이고 소비적인 동료-압박(peer-pressure)를 이겨내는 경우도 목격되지만, 이 행동에는 불분명한 불안감을 계속해서 뿌리쳐낼 상당한 용기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그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동료-압박을 노리는 사업이 전체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면, 그 사회는 그러한 면에서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 판단해도 무리가 없다).
‘눈물꽃 소년’은 현재를 비판하거나 비평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개인 경험을 담은 수필이다. 읽다 보면 혼자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는 훌륭한 수필이다. 내가 왜 즐거워했는지, 왜 놀랐는지, 왜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 그 이유들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밀려든다. 그 의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