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하면 통일 신라 시대 김대성이 축조한 아름다운 사찰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이라는 상식 정도를 떠올렸고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몇 년 전 불국사를 다시 찾기 전까지.
열두 살 아들과 SRT열차를 타고 경주로 떠나던 계절은 겨울이었고 올케, 조카들과 만나 일박을 하며 문화유산 가득한 경주에서 모처럼 문화 체험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다 오려고 계획한 여정이었다.
동궁과 월지 야경의 화려함에 넋을 잃기도 했고 휘황찬란한 신라의 유물들을 보기 좋게 구성한 경주 박물관의 풍성한 볼거리에 감탄하기도 했다. 대릉원의 완만한 곡선미를 지닌 노란 고분들 사이를 거닐 때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안해지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날 마지막 일정으로 경주의 대표 격인 불국사를 방문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정했다. 겨울인데 날이 별로 춥지 않아 비가 살짝 내렸고 흐린 하늘이 스산한 겨울 분위기를 깊이 느끼게 하는 날씨였다.
불국사의 정면에 서서 경내에 들어가기 전에 자하문으로 향하는 높다란 계단인 청운교 • 백운교를 보다가 계단에 다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신기했는데 입구에 있는 설명을 보고 이해했다. 사실 둘이 아닌 하나로 이어진 계단인데 이름은 아래쪽이 백운교이고 자하문과 가까운 위쪽이 청운교라고 한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부처님이 사는 곳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상징적인 장치로 볼 수 있다. 계단을 다리라고 표현한 것도 일반인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이어준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입구 설명을 적어오지 않아 네이버 백과에서 인용함)
이 계단이 이 세상과 저 너머 세상인 불국 즉 부처님이 사는 곳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의미를 깨닫고 보니 불국사라는 이름에 담긴 이상 세계를 흠모하는 신라인들의 강한 염원이 내 가슴을 두드리듯 와닿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파른 계단을 천천히 올라 입구를 지나면 유토피아에 다다를 수 있다는 수많은 신도의 소망이 담긴 사찰이 이곳 불국사, 현실 세계로 옮겨다 놓은 작은 내세였다는 것을.
나와 종교는 다르지만 현실 너머 이상 세계, 이생에서 섬기던 신이 다스리는 슬픔 없는 아름다운 곳을 바라며 사는 마음은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계단 아래서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안뜰에 들어가 사진으로 늘 보았던 석가탑과 다보탑도 이상 세계를 꿈꾸던 천 년 전 신라인들이 정성스레 만들고 신성시했을 존재라 생각하니 특별해 보였다.
경내에서 안쪽으로 들어가 길섶 여기 저기 놓여진, 신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쌓았을 수많은 작은 돌무더기들이 있는 장소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애잔해졌다. 누구든 고난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누군가 삶에서 겪었을 아픔과 그로 인해 생긴 간절한 소망의 흔적을 보았을 때 공감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듯하다.
이 여행 이후로 불국사라는 이름을 들을 때면 죽음 너머의 신비로운 세계를 상징하는 불국사의 의미와 돌무더기 하나하나에 담긴 이름모를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떠오르게 되었다.
아버지의 불국사 그림을 보고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그리는 작업을 할 때, 불국으로 들어가는 다리인 청운교 • 백운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다리를 건너갈 발걸음을 반기는 듯 아치 형태로 휘어져 환한 빛을 향하고 있는 나무들의 이미지를 그렸다. 영원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서 내가 계단을 올라가 닿게 될 이상적이고 영원한 장소는 밝디밝은 빛으로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