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청객과의 만남

유방암 진단과 그 이후

by 햇별

내 나이 52.

처음 사는 인생이라 힘든 거였겠지 느끼며 어찌어찌 젊은 시절 시행착오의 시간들은 잊고, 남은 생 즐겁게 살아보리라 결심하고 있을 때 찾아온 그것.

삶을 크게 흔들어버린 복병은 2월 직장 건강검진 때 느닷없이 발견한 유방암이었다.

암이라는 단어는 단 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란 한 사람의 마음을 깊은 심해로 떨어뜨릴 만큼 무겁기만 했다.


10월인 지금도 이 불청객 때문에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사는 게 불편하지만 진단받은 지 벌써 팔 개월이 지나니 이런 삶도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책에서 이야기가 있는 삶이 부유한 삶이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불편하고 아프고 두려웠던 순간들이 삶에 뚜렷한 이야기를 남겼으니 어쩌면 내 삶은 전보다 부유해진 걸까. 부유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다면 적어도 깊이가 생기지 않았을까.

암진단 직후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황망한 심정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한 적이 있는데, 주로 억울하고 슬프고 무섭다는 하소연 일색이라 4월에 스미싱에 낚여 휴대폰을 초기화시킬 때 지워 버렸다. 팔 개월이 흐르는 동안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법을 체득하게 된 지금은 암과 동행했던 날들을 기록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일들이 결코 불행하지만은 않았고 예상치 못한 기쁘고 감사한 일들도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꼈다.


봄을 맞이하면서 암을 맞이했고, 반년 동안 악명 높은 항암치료라는 것을 받고 나니 여름이 끝났다. 최근에는 암치료에 있어서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술도 받았고 움직임이 불편한 오른팔과 여태껏 달고 있는 배액관 한 줄이 그 사실을 일깨워 준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줄 단 1% 도 짐작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전시회 찾아다니고 만나고 싶었던 지인들 만나며 겨울 방학을 잘 보낸다 자부하고 있었지. 2월 7일, 건강검진 결과 이상이 보인다며 내과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던 날도 예전 직장 동료들과 오랜만에 카페에서 수다 떨고 있었지. 체력이 좋다고 자신하고 있었고 꾸준히 필라테스로 몸관리를 하는 중이었으며 살면서 큰 병을 앓아본 적이 없는 나였다. 작년 9월 아버지와의 2인전을 성대하게 마무리했으니 앞으로 나의 작업 인생을 새롭게 열어야겠다 결심하고 있던 차였다.


조직검사 결과를 받은 2월 중순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한 3월 말 사이 한 달 반동안 죽음에 대한 사색을 집중적으로 했다. 암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많이 진행이 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내가 금방 죽게 될지 아니면 나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죽기에는 내가 너무 젊다 싶었고, 고생만 하다 이 세상 떠나는 것 같은 연민이 들면서 눈물이 고였다. 당시 경황이 없어서 죽기 전 내 주변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까지는 못 했다. 요즘 내 주변을 미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곧 병원에서 폐와 간에서도 무언가 발견되었다는 소식, 유방암뿐 아니라 갑상선에도 암이 있다는 나쁜 소식들을 연거푸 알려 주었다. 내 몸 자체가 암덩어리가 되었나 마구 절망했다가 이후 폐와 간은 무사하다는 소식에 기사회생했다가 마음이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3월 마지막 주, 장기나 뼈 등에 원격전이는 없고 겨드랑이 림프에만 전이된 2기 추정의 암이며 항암 치료 후 수술한다는 구체적인 치료 계획이 나오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그 시점에 연로하신 부모님께도 암진단과 치료 일정에 대해 알려 드렸다.


다른 암환자들처럼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야 최근까지 수도 없이 했는데 착하게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없어서인지 그런 생각하는 게 내심 찔렸다. 항암치료받는 동안 불면증 때문에 새벽에 1-2시간마다 깼는데 그때마다 내가 한 일은 지나온 삶 속 죄에 대한 참회였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면 하늘에서 나를 불쌍하게 보시고 조금이나마 선처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안간힘이 아니었을지.

암이라는 놈은 연약한 나를 신 앞에서 겸손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