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어느 날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이 ‘사랑을 위하여(Dying young)’이라는 1991년도 영화의 영상들을 내 화면에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암에 관하여 유튜브에서 검색을 많이 했더니 암환자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뜨게 되었나 보다. 풍성한 붉은색 머리칼 휘날리는 이십 대 줄리아 로버츠의 싱그러운 미모에 적잖이 놀랐고 암환자 역을 맡은 캠벨 스콧의 우수에 젖은 창백한 얼굴을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풋내기 간병인 줄리아 로버츠가 캠벨 스콧이 항암 주사를 맞은 뒤 심한 부작용을 겪는 모습을 보며 울면서 자기는 못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에 묘사된 항암 치료란 환자가 끊임없이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하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는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나 역시 '항암'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저절로 머릿속에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대학병원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반년 동안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결정을 들었을 때 조직검사받고 운 뒤로 두 번째로 눈물을 흘렸다. 일주일 전까지는 나의 암 타입이 호르몬양성이라 항암치료가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 안 할 것 같다고 하셔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사이에 검사 결과를 면밀히 보니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 개수가 많아 항암치료를 권고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경험하겠구나 싶어 겁이 났고 관련 정보를 찾아볼수록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몸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의 이야기만 눈에 들어와 밤잠이 안 올 정도로 번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 잘 받자고 마음잡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마음을 정리한 뒤로는 치료를 이기는데 도움 되는 정보를 찾고 필요 물품을 구입하며 반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했다. 항암치료 기간 동안 백혈구 수치가 낮아져 감염 위험 때문에 날것을 먹을 수 없다는 정보를 접하고 주말에 남편과 함께 강릉으로 달려가 생선회를 실컷 먹고 왔다. 항암 초기에 온다는 탈모를 대비하여 마음에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생각으로 입원하기 전날 미용실 가서 긴 머리카락을 말년 병장 머리카락 길이 정도로 짧게 잘랐다. 집으로 오는 길, 휑하게 드러난 목덜미에 초봄의 시린 바람이 스칠 때 눈물이 핑 돌았지만 씩씩하게 암치료에 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소년 같은 머리 모양을 한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3월 마지막날 입원을 하고 왼쪽 쇄골 아래에 케모포트라고 해서 중심 정맥에 연결하여 장기간 정맥 주사를 맞을 때 도움이 되는 장치를 심었다. 정보를 찾을 적에 케모포트 시술이 아팠다는 후기를 본 기억이 나서 온몸이 경직된 채 두려운 마음으로 시술실에 누웠지만 마취덕에 예상보다 덜 아팠다. 케모포트를 심은 날 오후 곧바로 첫 항암주사를 맞았는데 멀쩡하다가 4시간 뒤쯤부터 구토가 멈추지 않았고 간호사 선생님을 급히 불러 구토방지제 주사를 맞고 지쳐서 일찍 곯아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구토 증상이 사라져 스스로 퇴원 수속하고 운전해서 귀가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내가 받은 항암치료는 주사요법으로 3주마다 A C 항암 4회를 맞고, 1주마다 T C항암 12 회를 맞아 총 16회 인 조합이었다. 암환자들 사이에 '공포의 빨간 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AC는 아드리아마이신과 엔독산을 합친 약으로 암세포의 세포막과 DNA를 공격하여 증식을 막아준다. A C 항암은 구토와 오심이 가장 큰 부작용인데 첫날에 크게 데긴 했지만 4회 맞는 동안 딱 이틀만 구토 증상으로 고생했고 오심도 일주일 내외만 견디면 되었다. 다음 주사를 맞을 때까지 첫 주 잘 버티면 두 번째 주에는 호전되기 시작했고 세 번째 주에는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T C 항암인 파클리탁셀은 주목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천연 물질로 세포분열 과정을 방해해 암세포 분열을 중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TC항암 초반까지는 살만한데 약 성분이 몸에 계속 누적돼서 후반부에는 몸이 붓고 손발이 저리며 특히 발과 다리가 많이 아팠다. 반년의 항암치료를 마치고도 파클리탁셀이 남기고 간 손발 저림과 관절통은 오래 지속되었다.
항암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부작용인 대머리를 나도 피할 수 없었다. '14 일의 기적'이라고 회자될 정도로 첫 번째 A C 항암 주사를 맞고 14일 뒤쯤 되면 대부분의(아마도 모든) 환자들의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한다. 손으로 살짝 잡아당기면 수북이 뽑혔으며 숱이 많은 나였기에 머리 감을 때마다 새둥지모양의 큰 머리카락 뭉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한참 빠질 때는 두피뿐 아니라 머리 전체가 옥신거리며 많이 아팠고 그 기간 동안 어린 시절 닭집에서 큰 통에 닭을 집어넣고 털 뽑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진 뒤 난생처음 본 내 하얀 두피와 두상의 실루엣이 생경했지만 뒤통수가 볼록하고 전체적인 형태가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예상치 못한 기쁨이 있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뒤통수가 납작한 줄 알고 살았을 것이다. 두 아들이 아기 때 둘 다 뒤통수가 둥글고 볼록해서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그 원조가 바로 나였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