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뜨나 보다.

ㅡ수능 D300일을 맞는 고3 애미의 마음이란. 부모, 쉼표

by Anne

K-Culture... 케이컬처... 하는데

K고딩의 삶이야말로 K-Culture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아닐까.

그중에서도 K고3은 두려움 그 자체!


나에게도 오고야 말았다. 그 시간이...

고3이 되기까지 울고 웃고 달래고 어르고 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엊그제 수능 D-300일이라는 이야기에

나도 생전 처음 겪는 K고3 엄마이야기를 나눠 볼까.


별스럽지 않게 키우려고 애는 써보았지만

또 흘러 흘러 남들 한다는 거 꽁지 따라도 가보고

또 다르게 가 본다고 이것저것 헛물도 켜보고

오늘까지 왔는데

아직도 엄마로 아이를 바라보며 맞나 틀리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작년 수능응원가로 떠들썩했던 중동고 교장선생님이신 이명학교장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어서 갔다가 작은 울림을 받고 또 한 번 내려놓고 반성을 하였다.

이명학 교장선생님의 강연 소주제가

'먼 훗날 아이의 기억 속에 어떤 부모님으로 남고 싶으신지요?'이었는데.

그 글귀를 보자마자 괜스레 울컥해 버렸다.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지난날 혹시 내 말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을까

앞으로 잘 지내면 좋은 것만 기억해 줄까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스치면서

울컥한 것이다.


이명학교장선생님의

부모, 쉼표라는 책을 찾아 읽게 되었는데

고전을 통해서 삶의 교훈을 전하시는데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혔다.


조선후기 능운이라는 기녀의 시


郎云月出來 (낭운월출래)

우리 낭군 달이 뜨면 오겠다 하시더니


月出郎不來 (월출낭불래)

달이 떠도 우리 낭군 오시지 않네


想應君在處(상응군재처)

생각해 보니 응당 우리 낭군 계신 곳엔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떠서겠지


한자시이지만 쉽고 내용이 어렵지 않아 쉽게 이해가 되는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약속한 날이 되어도 님이 오지 않으니 여인은 '님이 계신 곳엔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뜨나 보다'라고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낙관과 느긋함을 보여줬다.


엄마에게 자식은 사랑인데

사랑하는 자녀가 게임에 빠져있다고 혹은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서로 언성을 높이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사춘기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애교쟁이 아들이 고1쯤 방문과 입을 닫았던 그때는 문고리를 뜯어버릴까도 고민했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도 꿈쩍 않는 모습에 참이나 힘들었었다.


사실 다 아는 말이지.

내려놓기. 기다려주기... 놓아주기...

그래도 맘같이 안 되는 게 현실인데

진짜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다시 애교쟁이 아들로 돌아온 요즘.


너무나 열심히 K고3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더욱더 맞다 맞다. 맞는 말이구나.. 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뜨나 보다'


달은 반드시 떠오를 테니

믿고 기다려주자.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더 없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내자식이니 잘 돌아보면

결국 아이 아빠 아니면 엄마의 모습이 아니겠나... 허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