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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Sep 09. 2024

신호등은 '파란불'에 건넌다?

조금 삐딱한 생각


 신호등이 파란불이 되면 횡단보도를 건넌다. 이것은 도로 위의 혼돈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합의한 사회적 질서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조금 이상하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한 신호등에는 빨간불과 '초록'불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파란'불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파란불을 검색해 보면 '청신호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여기서 청은 푸르다는 뜻의 한자(靑)로 '푸르다'를 다시 사전에 검색해 보면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문화권에서는 푸른 하늘과 푸른 숲처럼 파란색과 초록색을 '푸르다'라는 개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파란불이 틀리지 않은 말일 수도 있다.

 

색깔에 관한 구분 관념은 각 문화권의 언어마다 다르다. 예컨대 일곱 빛깔 무지개는 과학자 뉴턴이 프리즘을 이용해 쪼개진 빛을 7가지 색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굳이 일곱 가지였던 이유는 서구 문화권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7에 대한 사고방식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른다. 일주일도 7일, 악보의 음계도 7계, 세계 7대 불가사의, 7가지 대죄처럼 말이다.


 파푸아기뉴의 베린모(Berinmo) 언어 사용자들도 우리처럼 파란색과 녹색을 한꺼번에 nol이라는 단어로 부른다. 주황색, 노란색, 황록색을 포함한 단어는 wor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영어 문화권에서는 파란색과 녹색을 blue와 green으로 분류해서 인지한다. 이 두 문화권에 사람들에게 특정 파란색 표본을 기억하라고 한 뒤, 파란색과 초록색 표본을 주며 이전에 기억한 색과 일치하는 것을 고르라는 실험을 한다. 그러면 초록색과 파란색을 한 단어로 인식하는 베린모 언어권 사용자보다, 두 색을 분리하는 영어권 사용자들이 훨씬 잘 구분해 내었다. 반대로 wor과 nol 경계선에 있는 색깔은 영어권 사용자보다 베린모 언어권 사용자들이 훨씬 잘 구분해 내었다.

 

 설령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문화권의 '푸르다'라는 포괄적 색깔 표현을 제대로 흡수하고 있었더라도, 무지개가 일곱 빛깔이라는 사실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신호는 파란불에 건너야 한다고 했을 때 필자를 포함한 학생들은 손을 들고 선생님께 진지하게 질문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 아닌가요?"

그러나 당시 그런 질문을 하지도 듣지도 못했다. 필자와 친구들은 분명 초록색과 파란색을 구분할 수 있는 충분한 언어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떤 강연자가 이 점을 지적하고 나서야 '신호등은 파란불에 건넌다'라는 명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당연한 것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된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이러한 순간들은 필자에게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주는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던 것들에 파문을 일으키는 순간들은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시켰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도 않았던 신호등 불빛이 새롭게 다가올 때, 모든 건 똑같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이 달라져 있었다. 필자는 이 공간에서 당연함이 파괴된 순간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이에는 조금 청개구리 심보가 들어간다.


 독자들에게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청개구리 심보는 가령 "모두가 초록불에 건너는 신호등을 나는 빨간불에 건너겠어"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초록불에 건너자는 사회적 합의는 효율적인 측면, 안전성에 대한 측면 등 다양한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공식적인 약속이다. 필자는 이 공식적인 약속을 깨부수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약속들의 내면에 무심코 지나친 것들을 들여다보고자 함이다.


사실 이 공간에서 필자가 쓸 글들은 다른 책들을 통해 얻은 기존의 지식들을 훔쳐오는 것뿐으로 필자의 독창적인 이론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 C. R. 홀파이크는 전 세계에서 2000만 부 이상 팔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이렇게 비평했다.


"이 저자가 말하는 사실들이 대체로 옳다고 해도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고... 

이 책은 지식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저자인 하라리 본인도 <사피엔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에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다. 여기에 내가 새로 연구해서 밝힌 내용은 없다. 

나는 널리 알려진 지식을 읽고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필자는 이 말에 용기를 받아서 글을 적어본다. 비록 독창적인 내용은 없더라도, 기존의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된 글이 독자에게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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