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철을 넘는 에어 서스펜션처럼
마흔이 넘어 새로이
시내버스의 운전대를 잡으며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거대한 버스의 운전석 의자에는
에어 서스펜션이라는 장치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처음 그 의자에 앉았을 때의
이질감을 잊지 못한다.
도로의 요철을 지날 때마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의자가 위아래로
덜렁덜렁하며 요동을 쳤다.
승용차의 단단한 시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마치 파도 위에 뜬 조각배처럼
꿀렁거리는 감각.
처음엔 그 흔들림이
멀미가 날 듯 어색했지만,
곧 그 장치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10톤이 넘는 쇳덩어리가
도로의 파인 곳을 밟고 지날 때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
그 날것의 물리적 타격이
운전자의 척추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자 스스로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충격을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자가 거칠게 흔들려야만,
역설적으로
운전자는 다치지 않고 온전히 핸들을 쥘 수 있다.
그 위아래로 덜렁거리는 운전석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며,
나는 묘하게도
우리의 인생과 투자가
이 에어 서스펜션을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달리는 인생의 도로는
결코 매끄럽게 포장된 고속도로가 아니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싱크홀을 만나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19개의 좋아 보이던 잡주들을 쓸어 담았다가
시장의 폭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던 나의 과거가 그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이력서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던
가장의 무게가 그랬다.
자본주의의 최전선,
매일 밤 내가 올라타는
3 배수 레버리지의 세계는
더욱 심한 요철 투성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이 거친 시장에서,
온몸에 빳빳하게 힘을 주고
그 변동성을 맨몸으로 버텨내려 한다면
결국 멘탈이라는 척추가 부러지고 만다.
그래서
나에게는 투자에 있어서도
에어 서스펜션이 필요했다.
복잡한 엑셀과 차트 분석 대신,
그저 매일 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기계적으로 매수하는
아주 단순한 시스템.
시장이 요동치고
내 계좌가 위아래로
거칠게 덜렁거려도,
감정을 배제한 이 단순한 매수 루틴이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해 준다.
파란불이 켜지면
더 싼 값에 수량을 모았다고 위안 삼고,
빨간불이 켜지면
자산이 불어남에 미소 짓는다.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인생의 요철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다.
내 앞을 가로막는 방지턱을 원망해 봤자
버스의 속도만 늦춰질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충격을 유연하게 흡수하며,
흔들리는 와중에도
결코 운전대에서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덜렁거리는 에어 서스펜션 의자에 앉아
시동을 건다.
위아래로 요동치는 삶의 굴곡을
기꺼이 받아내며,
세 딸의 든든한 미래를 향해
묵묵히 기어를 넣는다.
흔들림을 허락하는 순간,
우리는 꺾이지 않고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