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노선도와 주식 차트, 그 사이의 아버지
요즘 나는 종이 한 장과 씨름 중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그것은
바로 버스 노선도다.
기점부터 종점까지,
수십 개의 정류장 이름과 배차 간격.
버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예측 가능함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길로,
정해진 속도로 와야 한다.
내가 이 노선도에서
1미터라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모험이 아니라 사고가 된다.
나는 이제
매일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골목을 돌고,
같은 자리에서 브레이크를 밟게 될 것이다.
그 지루한 반복이 내 직업의 본질이자,
우리 가족의 생계를 지키는
확실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근 후,
유니폼을 벗고 책상 앞에 앉으면
나는 전혀 다른 세계의 지도를 펼친다.
바로 내 아이들의 계좌 속에 있는
미국 주식 차트다.
이 녀석의 움직임은 내 버스 노선도와 정반대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루에 10%가 오르기도 하고,
반토막이 나기도 한다.
정해진 길도 없고,
정류장도 없다.
그저 자본주의라는
거친 야생의 숲을 뚫고 우상향 하겠다는
불확실한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면서,
왜 투자는 그렇게 위험천만한 걸 하냐"고.
역설적이게도,
내가 노선도 안에 갇혀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투자는 야생에 던져둘 수 있는 것이다.
월급은 확실하지만,
그 한계가 명확하다.
내 월급만으로는
아이들에게 정해진 길 밖의 세상을
보여줄 수 없다.
아빠처럼
정류장 시간표에 맞춰 허겁지겁 사는 삶,
남들이 만들어놓은 노선도를 따라
뱅뱅 도는 삶밖에 물려줄 수 없다.
나는 그게 싫다.
유주, 현주, 진주.
내 세 딸만큼은 이 좁은 노선도 밖으로
나가길 원한다.
길이 없는 곳에도 가보고,
지도에 없는 숲도 헤매보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가난보다는
불확실한 부의 가능성을 쥐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아빠는,
오늘도 두 개의 지도를 본다.
낮에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선도를 꽉 쥐고 핸들을 돌린다.
밤에는 너희의 자유를 위해
차트라는 거친 파도 위에 자본을 띄운다.
나의 반복이 너희의 자유가 되기를.
나의 닫힌 원이
너희의 열린 문이 되기를.
아빠는 내일도 같은 길을 돌 것이다.
너희는 부디,
아빠가 가보지 못한 낯선 길로
거침없이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