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管子)의 '백년지계'와 나의 '꾸역꾸역'
"일 년을 내다보면 곡식을 심고,
십 년을 내다보면 나무를 심지만,
백 년을 내다본다면 사람을 심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정치가 관중(管仲)이 남긴
백년지계 막여수인(百年之計 莫如樹人)이라는 말입니다.
트럭 핸들을 놓고,
버스 핸들로 갈아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요즘.
나는 문득,
3회 차 째 돌아가고 있는
내 아이들의 주식 계좌를 들여다보며
이 말을 떠올립니다.
유주, 현주, 진주.
아직 돈의 'ㄷ' 자도 모르는
세 딸의 계좌에
아빠의 노동력으로 만들어 낸 화폐를
정해진 무게만큼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으로 시작했지만,
1회 차, 2회 차 성공을 거두며
그 씨앗의 크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매일 그 돈을 넣을 바엔,
차라리 타이밍을 봐서 한 방에 큰걸 노리지 그래?"
맞습니다.
곡식을 심듯 1년 농사를 짓는다면,
내 방식은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심듯 10년을 본다 해도,
이 미련한 적립식 투자는 너무 느려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돈을 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사람을 심고 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계좌에 찍힌 숫자가 아닙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이 폭락하나 폭등하나 상관없이
매일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자본을 쌓아 올리는 태도입니다.
시장이 좋으면 더 넣고,
나쁘면 빼는 요행이 아니라,
시스템이 성공할 때마다
원금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복리의 마법과 성실함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밤 금융어플을 켜고
매수 버튼을 누르는 그 지루한 반복.
그 꾸역꾸역 함이야말로
자본주의라는 거친 숲에서
내 아이들이 뿌리 깊은 나무로 버티게 해 줄
유일한 힘임을 나는 믿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30년 넘게 버스 운전대를 잡고
묵묵히 나를 길러내셨듯,
나 또한,
나의 노동을 연료 삼아
아이들의 자산 시스템을 돌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가문의 성실함을 유산으로 남기는 의식입니다.
곡식은 먹으면 사라지고,
나무는 베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아빠의 등을 보고 자란 사람은
100년이 지나도 남습니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빠가 심어놓은 이 씨앗들이
4회 차, 5회 차를 거듭하며
훗날 어떤 울창한 숲이 되어 너희를 지켜줄지.
하지만 괜찮습니다.
농부는 수확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씨를 뿌릴 뿐입니다.
백년지계(百年之計).
아빠는 오늘 밤도 너희라는 미래에 거름을 줍니다.
언젠가 너희가 스스로 잎을 틔우고,
세상이라는 비바람을
당당히 마주할 그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