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룰루랄라~ 며칠 전부터 칸쿤으로 휴가 갈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해마다 2월이 되면 구바씨와 나는 칸쿤으로 휴가를 갔다. 이번 해에는 제일 친한 M 부부와 함께 가기도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처음 가는 제대로 된 휴가라서 은근히 예전에 편안했던 생각에 ‘정말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으로 룰루랄라 칸쿤에 도착했다. 도착 다음날 함께 간 M 부부와 마야 문명이 있는 Chichen Itza Tour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Cenote 도 함께 보기로 했는데 그때 마침 칸쿤이 태풍에 휩싸인 중이어서 비가 엄청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뜨겁고 강렬한 햇볕이 잠깐 나오기는 했지만 자주 퍼붓는 태풍권의 비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정말 속옷까지 홀딱 젖었다. 이것도 추억이라며 질척한 젖은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쏘다녔다. 게다가 자연 sinkhole 인 Cenote 에 들어갔는데 수영하기에 너무 무서웠지만 이런 기회가 생전에 언제 또 있냐며 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이 엄청 맑고 엄청 차가웠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으스스한 sinkole 안에서 한 수영은 아주 짜릿했다. 물론 물을 싫어하는 구바씨는 사진만 찍어주었다. 돌아오는 버스는 에어컨디션이 엄청 세서 온몸이 흠뻑 젖은 우리는 두 시간이 넘게 추워서 오돌거리며 호텔로 들어왔다. 그다음 날부터 구바씨가 탈이 났다. Cenote 에서 수영도 하지도 않았는데...
목이 아프다며, 열이 난다며.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온 휴가라 비루비루한 몸을 이끌고 함께 다녔는데 영 입맛을 잃은 것 같았다. 약을 싫어하는 구바씨한테 입을 벌려라 하고 두 알을 쏙 넣어 주었는데 한 알인 줄 알고 삼켰을 것이다. 찬 공기 알레르기가 있는 구바씨는 약을 먹어서 괜찮다며 다시 차가운 수영장 물속을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저녁에는 열이 오르며 축 처졌다. 약을 워낙 원수 보듯 한 구바씨라 구슬려서 약을 먹이는데도 입맛을 잃고 처지는 느낌이 점점 심해졌다. 휴가 4일째 결국 여파는 나한테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목이 아파서 당장에 약 두 알을 집어삼켰다. 구바씨는 본격적으로 엄청 열이 나서 그곳에 친구가 마련한 불란서 식당에서의 특별 초대에 결국 못갔다. 함께 온 M 부부한테는 대충 얼버무리고 호텔에서 급하게 약을 사 먹이고 비몽사몽인 사람을 데리고 우리 모두는 칸쿤 공항을 떠났다. 호텔에서 사 먹인 약이 효과가 있는지 좀 살 것 같다며 이제 괜찮다고 다시 휴가 할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어서 안심이 좀 되긴 했지만 얼굴 몰골은 영락없는 환자였다. 함께 온 M 부부도 걱정을 하며 지내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며 좋아했다. 그들이 아프지 않아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입맛이 없어져서 그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음식들 중에 구바씨와 나는 대충 과일들만 챙겨 먹었었다. 휴가와서 이렇게 먹지 않는 적도 처음이었다. All-inclusive 여서 모든 것이 공짜였는데!! 소화제도 챙겨 같는데...
구바씨를 챙기던 나는 조금 나아진듯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좀 춥다고 느껴지더니 뭔가 기분이 심상치기 않았다. 구바씨의 긴 옷은 구바씨를 챙기느라 바빴다. 입국 절차에 엄청 사람이 많은데 오래 기다려야 하는 심리적인 영향도 있는지 그때부터 더욱더 몸이 떨리기 시작해서 결국 긴 옷을 찾아 입어야 했다. 입국 심사 기다리는 한 시간 정도 계속 한기를 느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둘은 정식으로 증상에 맞는 약을 먹고, 아기들이 있기에 감기 증상이지만 마스크를 썼다. 그때까지도 그것이 코비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일반 감기 일지라도 아기들 때문에 마스크를 하기는 했지만, 감기 치고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돌아 온 후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계속 골골거리며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구바씨는 입맛이 없다고 집에서도 먹으려 하지를 않았다. 몸이 축처지며 열이 나고 목이 아픈 나는 집안일을 하려하는데 이상하게도 집중이 안되었다. 본인 생각에 거의 나아졌다며 약을 안 먹으려는 구바씨와 실랑이를 하며 티격태격하느라 다른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구바씨가 '코로나는 아니겠지?' 라는 말을 하면서 그때부터 우리는 혹시?...코비드?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급히 TEST-KITS를 찾아서 test 한 결과, 우리 둘 다 아주 선명하게 두 줄이 나타났다. 코비드 양성이었다. 옆에 사는 아들 내외 한테는 순간 알리지를 못했다. 당황스러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스크는 했지만 돌아오자마자 아기들한테 왔다 갔다 했는데 아들 내외가 알면 화가 천정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코비드 생각을 미리 하고 오자마자 검사하고 아기들로부터 격리를 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난감했다. 알릴 수도 알리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가 계속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 당황함 속에서 구바씨한테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목 아래 어깨에서 경련이 생기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증상에 놀랬지만 일종에 코비드 후유증 증상일 수도 있으니 마시지를 하고 더운 찜질도 해보자며 부산거렸다. 좀 나아지는 듯하더니만, 식은땀까지 흘리며 몸에서 경련이 계속 일어났다. 불안한 나를 옆에 두고, 구바씨가 산책을 해보겠다, 뭔가 집중을 해보겠다, 설거지를 하겠다 등등 시도를 하는데 경련은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구바씨는 이것이 일종의 코비드 후유증인데 신경체계의 무리가 생긴 거다 라며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추측을 해대는데 그 표정은 아주 어두웠다. 본인도 어떻게 제어가 안 되는 경련 중에 걷는 걸음걸이마저도 흔들거렸다. 급기야 경련이 생길 때마다 말도 더듬었다. 난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행동하뎐 사람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황스러워하며 경련을 당하며 휘청 거리며 서성거리는 상황 속에 두려움만 커졌다. 누우면 경련이 더 심하다며 눕지도 못했다.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코비드를 생각도 못한 것도, 너무나 방심한 것도, 아들 내외한테 오자 마자 이야기를 못한 것도, 칸쿤으로 휴가 간 것도 후회가 되었다. 나는 당장 아들을 깨우고 911을 부르자고 했다. 이 새벽에 뭔가 무서운 일이 생길 거라는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새벽 3시. 나는 당장 911로 연락해야 한다며 동동거렸다. 어쩌면 시간을 다투는 문제일 수 있다고. 신경계통의 문제라면 stroke 이 올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구바씨는 911을 부르려는 나를 제지하며 ‘진정하고 일단 생각 좀 해보자” 라며 버럭 화를 냈다. 그렇게 흔들거리며 서성거리는 구바씨를 이 새벽에 잃을 수 있다는 무서움이 증폭되는 순간 식은땀이 나면서 열이 나는 내 머리속이 더욱 더 복잡해 졌다. 약 기운에 소파에서 잠깐 조는 동안 뭔가 덜커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벌떡 일어나 보니, 구바씨가 소리를 쳤다.
911을 부르지 않았지만 결국 아침 새벽에 아들 내외한테 이실직고했다. 다행히 아들이 화를 내지 않고 빨리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면, 당분간 격리는 해야 한다며 크게 나무라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천만 다행히도, 만만 다행히도 저혈당으로 인한 경련을 멈추었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공식적으로 코비드였다. 고열, 기침, 가래, 콧물, 냄새 못 맡고, 오한, 답답함, 식은땀이 엄청나고, 집중력도 없어지고, 무엇보다도 불안증세는 제어가 안되었다. 뭔가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오한과 식은땀이 날 때 함께 동반되어서 울고 싶었다. 테스트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넘어가려니 했던 증상들이 코비드라고 공식적으로 되고 나니 모든 증상들이 예사 롭지가 않았다. 구바씨는 가끔 독감을 앓기는 했지만, 나는 미국 온 후로 이렇게 아파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코비드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주위에 아는 몇몇 분들도 돌아가셨고, 작년에는 시어머니도 코비드로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진작 알리지 않아서 이렇게 됬나' 라는 전혀 관계없는 후회까지 하고 있었다. 구바씨가 둘 중에 하나는 살아야 된다며 이것저것 평소에 하지 않던 정보(?)를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병원으로 실려 가지 않는 한 별도의 특별한 약이 없다. 무조건 잠자고 쉬어야 한다’는 담당 의사 말대로 3일 동안을 침대에서 약을 먹고 잠만 잤던 것 같다. 치료라도 받아보고 죽게 병원으로 실려 가고 싶을 정도였다. 간간이 아들 내외가 끓여다 주는 수프들과 저혈당을 막으려고 오렌지 주스만을 마시며 버텼다. 일주일이 지나자 열이 내리고 인후통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구바씨와 나는 침대에서 “우리 살아 난거지?” 하며 아직도 식은땀으로 축 젖은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