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변화와 확장이 필요하다]
면접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나보다 더 뛰어난 지원자들이 많아서가 가장 합리적인 이유일 것이다. 구분해 보자면
1) 내가 잘한 경우, 다른 사람은 못한 경우 -> 합격
2) 내가 못한 경우, 다른 사람은 잘한 경우 -> 불합격
3) 내가 잘한 경우, 다른 사람도 잘한 경우 -> 알수없음
4) 내가 못한 경우, 다른 사람도 못한 경우 -> 알수없음
위 4가지 중 한가지 경우일 것이다. 일단 1번이면 무조건 합격한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만약 1번인데 불합격했다면 둘 중 하나다. 혼자 착각했거나, 면접이 중요하지 않은 회사로 필기 순으로 이미 결정해놨을 경우다. 후자는 최근에 거의 없어졌다. 면접도 비용이다. 불필요하게 관상 보려고 그런 비용을 지출하는 회사라면 가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물론 채용비리와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는 예외로 둔다.
2번은 무조건 불합격이다. 깨끗하게 부족함을 인정하자. 긴장을 많이 해서 따위의 변명은 하지 말도록 하자. 본인만 긴장하나. 누가 긴장하라고 강요했나. 다 내 탓이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발전과 변화를 할 수 없다. 난 실력이 있으나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못한다. 그럼 긴장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노력해서 보완해야 한다. 원래 사람은 타고난 게 다르다. 본인은 그걸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핑계대거나 억울할 것 없다. 본인이 다른 사람보다 잘하게 타고난 것도 있을 것 아닌가.
문제는 3,4번이다. 항상 3,4번에서 논란이 발생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4번은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못했는데 운으로 합격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시작이다. 예컨대 주식에 "초보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다. 주식을 처음 했는데 운으로 주식이 오르는 경우다. 이때 내가 예측한 게 맞았다거나 내가 주식에 소질이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다음번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면접도 마찬가지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나가는 자질과 능력을 확인하는 첫 관문이다. 이때 초보자의 행운으로 첫 관문을 통과한다면 그다음 관문들에서 반드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는 면접에서 치르는 비용보다 더 클 확률이 높다.
따라서 자질과 능력이 안되는 사람을 통과시켜줘선 안된다. 허나 지금까지 합격은 곧 정년보장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치 수능 한번 잘 보면 명문대 졸업장을 확보한 것과 같이. 이는 분명 비정상적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래왔다. 앞으로 사회가 합리화 됨에 따라 그런 비정상적인 운 좋은 케이스는 급격히 줄 것이다. 이에 기대지 말았으면 한다.
3번의 경우 떨어진다면 억울할 것이다. 이유를 찾기 가장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이마저 핑계를 대면 안된다. 그만큼 특별히 주목할 만한 차이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면접관 입장에서 생각하자. 얘도 괜찮고 얘도 괜찮네. 누가 뽑혀도 상관없다. 여기서는 자질과 능력이라기보단 개인의 기호에 따라 점수가 결정된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는 면접관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면접 컨설팅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할 것인가?
나의 경쟁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할 것인가', '나의 경쟁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관점'의 차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관점은 굉장히 편협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아예 관점이 없다. 사물을 보는 관점, 나를 바라보는 관점, 즉 주관, 소신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이는 정답만을 찾는 것에 길들여진 결과다. 원래 세상사에는 정답이란 것이 없는데 자꾸 정답을 찾으려 드니 나만의 관점인 주관, 소신이 세워지지 않는 것이다.
없다고 하면 억울할 테니, 더 좋은 답을 찾으려 유보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겠다. 이 사안에 대한 '답이 뭐지','더 좋은 답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내 주관은 유보된다. 이렇게 자신만의 관점을 쌓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리면 막상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사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란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 내 관점을 세워야 한다. 나는 안보에 대해선 경제적으로 과도한 비용이 지불되더라도 과잉방위가 낫다고 생각하면 찬성하는 것이고, 지금 있는 무기체계로도 충분한 방어가 가능하고 없던 장비를 들어오려면 어떤 변화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러한 변화가 없이 과도한 비용이 드는 것을 도입하기는 근거가 빈약하다면 반대를 하면 된다. 근데 대부분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무엇을 모르는 건지도 모른 채. 지금까지 본인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견해를 확립하면 된다. 이후 또 다른 정보를 취득하게 되면 본인의 견해를 수정하면 된다.
'사드는 남북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라는 새로운 정보를 취득했으면 그러한 국외 정세를 파악해 보고 본인의 견해를 고수할 것인지, 수정할 것인지를 판단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관점'이다. 사드에 대해 '남북 관계' 만을 고려해 견해를 피력한 사람과 '남북 관계'에 '미중관계'까지 고려해 견해를 피력한 사람 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지점이 나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낼 수 있는 요소인 '관점'의 차이이다.
'아~ 이 지원자는 사드에 대해 남북 관계만을 고려하는데 이 지원자는 그와 더불어 미중관계까지 고려한 의견을 내놓내'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관점의 이동, 확장이 없는 채 남북 관계에서 더 좋은 답변을 찾으려 노력한다. 허나 이는 노력해서 더 좋은 것을 찾는다 한들 크게 차이가 없다. 내 관점의 범위가 그 정도일 뿐 둘 다 똑같다. 나는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고 착각할 뿐이지.
예컨대, '존경하는 인물'을 질문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은 '부모님'이다. 그럼 듣는 사람은 '효자구나, 기특하네'라고 생각할까? 아니다. 내 경우는 '이 아이는 아직 가정에서 벗어나질 못했구나'라고 생각을 한다. 20대 후반 30대 가까이 됐으면서 '나이만 들었을 뿐이지 아직도 부모에서 벗어나질 못한 아이구나' 란 생각이 먼저든다. 물론 실제로 부모님 존경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유치원, 초등학생, 많이 쳐줘도 중학생 때 끝나야 했다. 부모님은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단 감사의 대상이다.
20대 후반 30대쯤이라면 연민의 대상쯤이 됐어야 정상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40대 50대쯤이면 친구 같은 대상이 될 것이다. 10대 때는 용돈 주고 학비 주고 나를 보호해 주니 감사의 대상이 맞다. 20대 후반쯤 되면 10대 때 느끼지 못 했을 연민, 즉 돈을 벌어보니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내 나이 때 부모님은 나를 낳아 키우셨을 텐데', '그 시절에 본인도 하고 싶은 게 많았을 텐데' 란 연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존경은 그 보다 더 높은 존재에 가 있어야 한다. 이유도 뻔하다. 성실함, 책임감, 청렴함 대충 이런 것들이다.
존경의 대상은 본인의 성장을 나타낸다. 처음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부모님에서, 학교를 들어가면 선생님, 교수님으로 바뀐다. 그러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수록 그동안 내가 볼 수 없었던 제3의 존재로 바뀌는 것이 정상이다. 내가 아직 가정에서 벗어나질 못했는지, 학교에서 벗어나질 못했는지 파악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고등학생들한테 물어보면 압도적으로 '선생님'이 많다. 이는 정상적인 성장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위해 부족하다. 가정, 학교에서 일찍 벗어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이를 관점의 변화, 확장이라 한다.
부모들도 자식이 본인을 존경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훌륭한 존재가 되길 원하지. 면접관도 본인의 부모 연령쯤 되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들도 자신의 자녀가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답변에 공감하지 못한다. 좀 더 넓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즉 시야를 넓히길 바란다. 본인이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님 자녀라면 인정해주겠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관점이 협소한 것이다.
차라리 부모님 보다 연예인을 얘기하는 것이 낫다. 굳이 설명 안 해도 누군지 대부분 알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재석을 많이 얘기한다. 같은 사람을 얘기하더라도 얼마든지 관점의 변화를 줄 수 있다. 이유로 최고의 자리에서 겸손함, 배려심을 꼽는다.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너무 뻔하다. 나라면 성장성을 꼽겠다. 유재석은 원래 그렇게 괜찮은 나이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는 노력의 결과다. 좋은 사람,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실력으로나 인품으로나.
이런 사람이었다. 본인도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감추지 않고. 내가 왜 '입상'밖에 안돼. 못마땅한 게 다 드러난다. 또한 리포터 시절 방송 울렁증으로 실수 연발인 시절도 있었다. 지금의 유재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놀라울 수도 있다. 이렇게 모자랐던 사람이 지금과 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능력.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노력했을까. 이런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어야 차별화된 나만의 관점이 정립된다.
나만의 관점, 즉 주관, 소신이 필요하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했어요. 어떻게 대처하시겠어요?' 란 질문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은 '상사를 설득해보겠다' 와 '상사가 지시한 것이기 때문에 하겠다' 란 답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당한'이라는 단어다. '부당한 것을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여기서는 내가 판단한 것이다. 그럼 상대는 정당하게 판단했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나의 관점과 더불어 상대인 상사의 관점도 생각해야 한다. '상사가 지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사가 어떤 생각을 했을 수 있기 때문에'라고 해야 상사의 관점도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이 나의 관점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상대의 관점까지 고려해서 이야기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학생일 때는 나의 관점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기껏해야 부모님, 친구 이 정도 관점만을 고려해왔을 것이다. 사회는 이보다 훨씬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나' 그리고 '상사', '동료', '선배', '후배', '회사', '협력업체', '거래처', '발주처' 등등 다 나열하기 힘들다. 이러한 관점이 '나'와 '너' 2차원 평면에서 '나'와 '너', 또 다른 '그'가 포함된 3차원 입체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없이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 확장은 어떤 질문에서나 가능하다. 예를 들면 '봉사활동해본 경험' 을 질문했다. 대부분은 이러한 봉사활동 경험을 통해 '보람을 느꼈다', '뿌듯했다' 등 나의 관점을 담는다. 또는 '그러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감사해하는 모습에 되려 미안했다' 등 상대의 관점을 담는다.
여기까지만 와도 다행이다. 실제로 나는 봉사활동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사회복지사의 관점을 담았다. '우리는 일주일 한번 하는 것이지만 사회복지사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으며 사명감만으로 일하는 모습에 안타까웠다. 일주일에 한번 만이라도 꾸준히 가서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너의 관점에서 한발 나가 그의 관점을 담았다. 지금껏 본인이 들었던 얘기와 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는가.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얼마나 대단한 봉사활동을 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관점의 변화, 확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관점'의 변화 및 확장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는 비단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물에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기술직이라면 '비용'과 '품질'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 대해 꼭 고려해야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품질뿐만 아니라 비용도 중요한 요소다. 학생들은 비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인에게는 품질보다 오히려 비용이 더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천만 원짜리 TV를 개발했다.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그 제품이 팔리겠는가. 기술과 가격의 트레이드오프가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 및 확장을 쉬운 말로 '지적 능력'이라 한다. 지적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이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일단 다른 관점, 내가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은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게 된다. 관심을 받아야 좋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크다. 좋은 점수를 받아놔야 내가 합격할 확률이 크다.
즉 관점의 차이가 당락을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는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레 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의 축적으로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생긴다. 이와 같이 경우의 수가 많은 사람을 '전문가'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면을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다양한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와 상사, 회사와 고객, 비용과 품질, 환경과 개발, 변화와 안정 등등 사람과 사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는 연습을 하자. 그렇게 하다 보면 다른 사람과는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본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관점의 변화 , 확장 = 지적능력
마지막으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하며 칼럼을 마친다.
첫 번째, 지금까지 내가 하는 말 머릿속에 그려보자. '나'는 점이다. 점, 수학 시간에 배운 거다. 1차원. 여기에 '너'가 등장하면 둘 사이에 선이 그어지고 선 모이면 면 생긴다. '나'와 '나'로 인한 관계의 평면. 2차원. 쉽지. 여태 당신 삶은 대체로 이 2차원 내에서 해결되는 삶이었다. 근데 '나'와 '너'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그'가 등장한다. '나'로 인한 x축과 '너'로 인한 y축이 만든 평면과 만나지 않는 공간에 '그'가 등장한다. '나'로 인한 x축과 '너'로 인한 y축이 만든 평면과 만나지 않는 공간에 '그'가 출현한다. 이제 '그'의 위치 표시하자면 z축이 필요하겠지. 3차원.
이제 그 입체망에서 '그'가 존재하는 z축으로 이동해 x축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위에서 아래로, 바라본다 생각해보자. '그'의 좌표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다. 그 능력을 자기객관화라 한다. 어른과 아이를 결정적으로, 구분 짓는 능력이다. 지성이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이게 안 되면 어른, 아니다. 이건 주름살처럼 절로 안 생긴다. 이두박근처럼 획득해야 하는 거라고. 어떻게. 내 평면으로부터 벗어나라. 등짝 붙일 공간만 있어도 집, 나오는 거다. 졸업 전까지 최대한 자주 이 나라 떠라. 어떻게든 내 평면 밖으로 나가라. 그렇게 나와 다른 걸 조우한 분량이 충분히 축적되면, 어느 순간, 그게 된다.
- 건투를 빈다 <김어준 저> 중 -
시큰둥 관점과
깊숙이 관점
난 이분의 관점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큰둥' 관점이다. 시니컬과 다르다. 사안에 대해 시큰둥하게 바라본다. 그 속에서 객관화된 본인만의 관점이 나온다. 이른바 '자기객관화'다. 총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야 섹시하다. 그 사람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졸라 섹시하다'. 이게 그 사람의 관점과 스타일이다.
반면 상반된 스타일로 유시민 작가가 있다. 이 분은 '깊숙이' 관점이다. 시큰둥하게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더 파고들어가 아주 깊숙이 바닥까지 파헤친다. 그 통찰에서 일종의 쾌감이 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작가다. 사안의 원인에 대해 파고들어 가다 보면 인류 기원까지 가곤 한다. 때론 인류 진화론까지 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도 한다. 좀 재수 없을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토론의 신'으로 불린다.
이렇게 '시큰둥'이든지 '깊숙이' 든지 자신만의 관점을 갖자. 그래야 섹시한 어른이 된다. 아이 짓 좀 그만하자. 이제 어른이다. 어른이 되면 합격은 따라온다. 저절로 -헨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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